뭐든지 자세히 보면,
한줄 적을 게 두줄이 되고 세줄이 되고,
그래서 자세히 보아야 한다.
콧잔등에 감겨오는 반가운 계절의 바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희노애락의 역치가 나같은 사람에겐 적격이다.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슬퍼하기 때문에.
매일 보는 하늘이 오늘따라 더 푸르러서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그건 자세히 보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무엇이든 더 깊어지고 오래 기억된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에게 인생을 논할만한 나이라고 하기엔 오만함이 느껴지는 나이인지라 이런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에 좀 더 집요해진 느낌이다.
겨울
겨울에만 볼 수 있는것들
내 어깨에 내려앉는 눈, 얼굴에 스치는 날카로운 바람과 바람소리, 입고 외출하기만 해도 쉽게 지치는 겨울옷의 무게, 겨울의 딸기, 사과,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불 속, 차갑고 푸른 색을 씌워놓은 듯한 세상과 그에 반한 따뜻한 백열등의 노란 빛 모두가.
우리는 매번 잊는다. 오늘 온도가 2도면 어느정도의 옷차림이 맞는 것인지, 몇겹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인지,
시즌오프라는 문구가 벌써 적히기 시작하면 벌써 겨울이 끝나가는 듯 착각을 하지만 사실 4월에도 눈이 내린 적이 있다는 사실을.
지독하리만치 추웠던 겨울도 희석되어 매번 더 추운 것 같고, 더 고단한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그립고 그 때가 좋았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때가 좋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가만히 그 생각들을 한번 더 들여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매번 좋았고, 매번 행복했구나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이순간을 놓치지 않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그 순간에 문질러 섞어버리는 사람이 결국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사실을.
여름
우리는 여름 내내 같은 습기를 머금고, 우산을 들고, 지나가기 위해 서로의 우산의 키높이를 달리하여 걷는다.
누가 먼저 우산을 높이 들어주나 그 작은 배려도 눈치를 살피며 걷고, 익숙해지지 않는 불쾌감을 안고, 축축함을 느끼며 실내에 들어서면 땀을 씻겨내리는 듯한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반가웠던 냉기에 몸을 움츠리고, 집에 돌아와 '더위'라는 고단함을 물에 씻겨내린다.
4개월간의 그 진한 게절성에 의해 그때 그 순간들의 기억 또한 진하게 기억 속에 내리 앉는다.
그리고 걷다가 문득 스친 냄새 다른 바람을 느끼며 계절이 바뀔 것을 기대하고, 온몸을 휘감았던 진한 더위가 사그라들며, 약간은 서늘함을 느끼며 그렇게 걷는다.
그리고 그 바람을 통해 멈춰있던 여름의 시간이 흘러간다는 걸 문득 깨닫고,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듯하다.
여름에는 더위를 견디는 것만으로 심신이 지쳐 무언가 더 생각하지 않는다. 육체가 힘드니 더 이상 생각하는 건 사치인 듯하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여름은 낙관의 계절인가.
그래서 가을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고 우수에 젖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옷가지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손이 가벼운 계절 가을은 짧게 인사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 어느 한순간 세상을 흰, 회색빛, 파아란 색으로 색칠하는 그 계절이.
이번에는 여름같은 고됨과는 약간은 다른 고됨이 시작되는 계절
본래 내 몸보다 커진 부피, 무게, 이미 그것만으로 어깨가 무거워 더 많은 짐을 느끼게 되는 계절
눈이 내리는 날이면 사람이 더 많아지는 지하철, 한숨 짓게 되는 출근시간
얼지 않을까 창가 베란다에 놔둔 식물을 계속 들여다보며 만지고 녹기를 바라며 안에 넣어두고.
대신 아이스크림을 들고 들어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이 녹을 걱정은 없는 그런 계절
집에 돌아오는 길 바람과 사람에 잔뜩 치이다 들어온 집
훈훈한 방기운에 겉옷을 벗고, 한참을 쇼파에 앉아 멍하니 고요에 적응하다 차를 마시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차의 온도,
찻잔의 온도로 인해 빨갛게 녹아내리는 손가락의 냉기
겨울이라는 계절은 그렇다. 더 많이 추워서 더 많이 따뜻한 계절.
나에게는 겨울이라는 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