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째 정답을 찾지 못한 질문
"선생님."
"이든 선생님."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나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했다. 아가씨, 언니, 간호사, 간호사님…. 저마다의 편의대로 불리던 이름들 사이에서, 나를 늘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던 한 분이 계셨다. 50대의 남자 환자분이셨다.
신규를 갓 벗어났던 서툰 시절이라 나는 그 호칭에 매번 몸 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한결같은 그분의 정중함과 세심한 배려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든 선생님이 주사를 놔주면 제가 마음이 참 편해요." "이든 선생님 덕분인지, 오늘은 제가 컨디션이 좀 좋네요."
말기암이라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그는 늘 품위를 잃지 않는 분이었다. 하지만 병마는 정중한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폐 전이가 심해질수록 호흡은 그에게 일상이 아니라, 치열한 사투가 되어갔다.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해도 더 이상 편해지지 않는 시기가 왔고, 앙상해진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병실을 채웠다.
어느 날,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던 그가 나의 옷자락을 붙들며 간신히 입을 뗐다.
"답답해요... 무서워요... 도와주세요..."
주치의의 처방이 내려졌다. 아티반(Ativan). 극심한 불안과 호흡 곤란(Air hunger)을 잠재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주사를 투여하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거칠었던 환자분의 숨이 서서히 잦아들며 평온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그 평온한 얼굴 그대로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나는 침대 옆에 서서 심전도(EKG) 모니터의 리듬이 서서히 일직선으로 변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분은 이미 DNR(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를 작성해둔 상태였다.
평온해진 환자분의 얼굴을 보며 안도했지만, 이후 맞이한 임종 앞에서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내가 놓은 그 주사가, 그분의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모니터의 그 일직선이 말해주는 '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사의 사망선고가 있기 전까지 고요히 그분 곁을 지켜드리는 것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
병의 진행은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죽음 앞에서 도움을 요청하던 그분에게, 나는 더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그냥 편안하게 해 달라는 말 앞에서 어디까지가 옳은 선택일까.
정답은 없었다. 그저 그 순간, 환자에게 가장 필요해 보이는 선택을 찾기 위해 끝까지 고민할 뿐이다.
늘 어렵다. 삶과 죽음의 경계, 치열한 치료와 마지막을 받아들여야 하는 양면성. 함께 울어주는 위로와, 애써 담담해야 하는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나는 이 모든 것이 21년째 어렵다. 그래서 오늘도, 어려운 시험문제처럼 조심스럽게 풀어나간다.
==============================
- 이중 효과의 원칙:
환자의 고통 완화라는 '선한 목적'이 생명 단축이라는 '원치 않는 결과'보다 우선할 때, 그 의료 행위를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보는 원칙이다.
... 긴 우울 끝에 나의 죄책감을 조금 덜게 해 준 내용이기도 하다.
현장에서는 그 원칙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고민이 따른다. 그래서 의료진은 매 순간,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 가장 덜 아픈 길을 찾아가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