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던 조교 시절
“불안했던, 떨리기도 했던 1학년 실습 시험이 드디어 끝났다.
평가자의 입장으로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지만, 최대한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얘들아, 오늘 잘하고 못하고는 인생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아. 시간이 흐르면 스킬은 누구나 익숙해지니까.
그렇지만 의료인의 양심은 늘 간직하길 바란다. 정말.”
– 2011년 어느 날의 기록 중에서
얼마 전, 아주 오래된 기록 하나를 다시 읽게 되었다. 2011년, 내가 간호대학 조교로 일하던 시절 개인 페이스북에 남겨두었던 글이었다. 지금 읽어보니 웃음이 났다. 그때의 긴장과 공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간호대학 조교로 2년을 보냈다. 첫 해에는 1학년 학생들을 맡아 기본적인 학사 행정 업무와 함께 기본간호학 실습 지도를 했다. 실습 시험이 있는 날이면 학생들보다 내가 더 긴장했다. 평가자의 입장으로 아이들 앞에 서는 일은 늘 어색했고, 내가 매긴 점수가 누군가의 학점이 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최대한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조금 엄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진지했다고 기억한다. 시험이 끝난 실습실에는 늘 다양한 얼굴들이 남았다. 안도의 표정, 아쉬움이 묻은 눈빛, 그리고 끝내 터진 눈물.
낯선 분위기가 버거워 고개를 숙이던 아이들, 교수님께 혼나서 울던 아이들, L-tube 하나 때문에 마음이 무너졌던 아이들. 그 작은 장면들이 시험이 끝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듬해, 아이들은 2학년이 되었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의 담당 조교로 업무가 이어졌다. 2학년부터는 외부 병원 실습이 시작되었다. 한 학기 안에 절반은 이론 수업, 절반은 병원 실습. 정해진 학점을 절반의 시간 안에 채워 넣어야 했기에 아이들의 수업 일정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빡빡했다. 어쩌다 보강이라도 잡히면 0교시부터 7–8교시까지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
대학생이지만 어딘가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 여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여고생 특유의 깔깔거림과 웃음이 남아 있던 시절. 나는 조교였지만 아이들과는 묘하게 담임선생님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석이 잦은 아이들에게 연락을 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붙잡아 밥을 먹이고, 고민을 듣고, 공감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외부 병원 실습 배치를 하던 때의 기억도 선명하다. 학생들은 서울 시내와 수도권 병원으로 로테이션 실습을 나가야 했다. 나는 아이들이 실습 때문에 여관에 머무는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이들의 집 주소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네이버 길 찾기를 열어 각자의 집에서 실습지 병원까지의 경로와 시간을 일일이 확인했고, 모두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도록 병원 배치와 실습 조를 다시 짰다.
말로 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8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생활 동선을 전부 고려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나는 그 일로 2주 넘게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때의 기억에는 이상하게 뿌듯함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해 겨울, 나는 발목 인대 이식 수술을 받았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간단한 수술이라고만 말씀드렸고 수술 당일만 어머니가 함께하셨다. 그 이후의 입원 생활은 친한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조용히 보내려 했다.
그런데 수술 후 이틀째부터 아이들이 돌아가며 병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밀어주고, 검사실과 치료실 이동을 도와주고, 간식을 들고 와 별것 아닌 이야기로 웃다 가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 시간은 예상보다 덜 힘들었고 생각보다 훨씬 덜 지루했다. 오히려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이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돌이켜보면 나는 처음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던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이라기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던 시절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들,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랐던 마음들. 그 시간들과 그 아이들 덕분에 나 역시 조금은 더 나은 어른이 되어온 것은 아닐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제 그 아이들도 서른 중반을 넘겼을 것이다. 어디선가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그 아이들도 종종 그 시절을 떠올리는 순간들이 있을까.
그때의 시간이 그들의 기억 속에도 괜찮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조용히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도, 여전히 고마운 시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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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ube (Levin tube):
코를 통해 위까지 삽입하는 관으로, 위 내용물 배출, 영양 공급, 약물 투여 등에 사용된다. 학생 시절, 서로에게 L-tube를 삽입해 보는 실습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