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나도 선명한, 혼나지 않았던 기억

보고 배운 대로 넉넉한 부모가 되기

by 온 이든

병원에서는 어떤 응급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사람이지만, 집으로 돌아와 ‘엄마’라는 명찰을 다는 순간 나는 자주 무너진다.


거실 바닥에 엎질러진 우유 한 잔, 여기저기 어지러운 장난감, 숙제처럼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아이들 앞에서 내 목소리는 종종 날카로워진다. 아이를 재우고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앉으면, 하루 동안 쏟아낸 감정들이 되돌아와 마음이 무겁다.


‘겨우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냈나.’


자책이 깊어질 즈음, 30년도 더 된 기억 몇 조각이 떠오른다. 집이 가난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어린 내가 부모님께 느꼈던 미안함들이다.



8살, 골목길 어귀에 흩어진 유리 조각


지금처럼 페트병이 흔치 않던 시절, 유리병에 든 코카콜라는 우리 가족에게 커다란 사치였다. 아마 그날은 나와 오빠가 먹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던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꽤 큼지막한 콜라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오고 있었다. 그러다 비닐 손잡이를 놓쳤는지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병이 깨졌다. 울퉁불퉁한 흙길 위를 적시는 검은 액체와 날카롭게 부서진 유리 파편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당시 콜라 한 병의 정확한 가격과 그 가치까지는 잘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내 실수로 우리 집이 더 가난해지고 부모님은 더 힘들어질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과 슬픔이 뒤섞여 숨이 턱 막혔던 것 같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나에게 부모님은 화를 내는 대신, 다친 곳은 없느냐며 내 손부터 살피셨다.



10살, 비포장 흙길 위로 쏟아진 하얀 쌀가루


명절을 앞두고 없는 살림에 쌀을 모아 방앗간에서 빻아온 고운 쌀가루였다.


아빠가 들고 가던 보따리를 사촌 언니와 서로 들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그만 손을 놓쳐버렸다. 먼지 날리던 비포장 흙길 위로 눈부시게 하얀 가루들이 허무하게 쏟아졌다.


수습할 수도 없이 흙먼지와 뒤섞인 쌀가루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가루들이 송편이 되어 밥상에 오르길 기다렸을 아빠의 마음을 알았기에 내 고집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때도 아빠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괜찮다, 다시 하면 되지." 나는 그 침묵이 혼나는 것보다 더 아프게 기억에 남았다.



13살, 롯데월드에서 잃어버린 텅 빈 마음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으로 간 롯데월드.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에도 딸자식 기죽지 말라며 용돈을 챙겨주셨다.


나는 그 돈이 아까워 먹고 싶은 간식 하나 사 먹지 않고 손목 가방에 꼭 넣고 다녔다. 나중에 부모님 선물이라도 하나 사려고 아껴둔 돈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 손목에 걸고 다녔던 작은 가방이 없어졌다. 결국 하나도 써보지 못하고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화려한 놀이기구들 사이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내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내가 너무 한심했고, 부모님 선물이라도 미리 사둘 걸 하는 후회에 화도 났고 그런 감정들이 뒤섞여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했을 부모님 생각에 너무나 미안해서 자꾸만 코끝이 찡해졌다.


그렇지만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빈손인 나를 보고도, 부모님은 "맛있는 거 못 사 먹어서 어떡하노..."라며 오히려 나를 안쓰러워하셨다.



그럼에도 화내지 않았던 마음을 생각하며


그 순간마다 크게 혼이 났더라면 차라리 미안함이 덜했을까. 그랬다면 이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흐릿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불쑥불쑥 그때의 슬픔과 미안함이 되살아난다.


나의 실수가 부모님을 더 힘들게 만들 거라는 걸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더 슬펐던 것 같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내가 나쁜 마음으로 의도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헤아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 속에서 부모님은 어린 자녀에게 감정을 쏟아내거나 화풀이를 하지 않으셨다.


내 기억 속의 부모님은 인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하게 혼내셨지만, 사소한 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신 적은 거의 없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훨씬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왜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이토록 오르락내리락하는 걸까. 그 기억들을 떠올릴 때면 그때의 부모님을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부모님이라고 왜 화가 나지 않으셨겠는가. 귀하게 산 콜라가 깨지고 식구들이 먹을 쌀가루가 흙먼지 위로 쏟아졌을 때, 그분들도 분명 속상하고 허탈하셨을 것이다.


다만 그분들은 물건의 가치보다 자식의 미안해하는 마음을 먼저 바라봐 주셨다. 이미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어린 딸에게 화를 내는 대신, 그 감정을 꾹 눌러 담아 '괜찮다'는 침묵으로 감싸 안아주셨던 부모님.


그것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지켜주려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평생을 살아도 부모님의 사랑을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자주 전화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오늘도 해본다.


그리고 보고 배운 대로, 나도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진 너그러운 부모이고 싶다.


오늘도 아이와 씨름하며 자책하고 또 다짐하는 ‘나와 같은’ 평범한 부모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우리는 여전히 부모라는 이름을 배우며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중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흔들리지 않는 사람, 나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