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뒷면에서 만난 온기들에 대하여
첫 취업이었다. 나는 대구 사람이고, 첫 직장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이었다. 병원 신규간호사는 보통 같은 날 동시에 입사하지 않고, 인력이 필요한 부서에 따라 입사 시기가 정해지는데 이를 ‘웨이팅’이라고 부른다.
나는 5월 1일 입사 예정이었고, 그보다 앞선 2월 말에 일주일간 전체 신규간호사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있었다. 서울에 연고가 없던 나는 그 일주일을 어디서 지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함께 합격한 같은 학교 친구도 고민 중인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병원 근처 모텔에 방을 잡아 함께 지내기로 했다.
혼자였다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결정이었지만, 둘이어서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선금을 내고 모텔에 들어가 우리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다. 이론 수업, 실습 수업, 병원 투어까지 하루 일정은 빡빡했고, 저녁이 되면 긴 수다를 나눌 힘도 없이 그대로 잠들기 일쑤였다.
셋째 날 아침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걸어두었던 옷과 가방의 위치가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불길한 마음에 가방을 열어보니 지갑 속 현금이 모두 사라져 있었고, 옷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잔돈까지 모조리 없어졌다. 신용카드 한 장 없던 시절, 그 현금이 우리의 일주일 생활비 전부였는데...
우리가 자는 사이, 누군가 방에 들어왔던 것이다. 처음엔 너무 황당했고, 곧이어 무서움이 밀려왔다. 만약 돈이 아니라 사람이 목적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들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우리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모텔에는 CCTV가 없었고, 남아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중년의 경찰 아저씨 두 분은 첫 상경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되어 안타깝다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그래도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모텔 사장님은 선금 이후 남아 있던 숙박비는 받지 않겠다며 마음 편히 지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첫날 마트에서 미리 사 두었던 컵라면과 간식들이 있었다. 점심은 병원 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그 비상식량으로 버틸 수 있었다.
첫 사회생활의 시작은 그렇게 서글픈 사건을 안고 있었지만, 내 옆에 친구가 있어서 덜 무서웠고 덜 슬펐다.
그날 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강도가 아니라 돈만 가져간 좀도둑이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경찰 아저씨들의 안타까운 눈빛이 고마웠고, 모텔 사장님의 작은 배려가 고마웠고, 미리 사 둔 라면이 있어서 고마웠다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여서 감사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울지 않고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까지 오리엔테이션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왔고, 우리는 겁먹거나 포기하지 않고 정해진 입사일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 첫 단추 이후로 나는 어느덧 21년째, 서울이라는 제2의 고향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의 일상 속에 크고 작은 시련들은 찾아온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련의 뒷면에는 늘 숨을 고를 수 있게 해 준 사람들과 작은 도움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의 손길이 되기 위해 매 순간 애쓰며 살고 있다.
그리고 어렵긴 하지만, 작은 순간들에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