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창고를 주제로 한 상생교향곡
제3악장-철학

제3편 데카르트

by 신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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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는 남자


정 사원은 PDA를 든다.

오전 10시. 시스템에는 '음료 20박스'라고 떠 있다. 어제 입고된 것. 전산상으로는 정확하다.

정 사원은 팔레트 앞에 선다.


그는 센다.

손가락으로 짚으며. 하나, 둘, 셋. 입술이 움직인다. 소리는 내지 않는다. 넷, 다섯, 여섯.

윗줄 다섯 개. 둘째 줄 다섯 개. 셋째 줄 다섯 개. 넷째 줄.

넷.


그는 다시 센다.

처음부터. 하나, 둘, 셋.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윗줄 다섯. 둘째 줄 다섯. 셋째 줄 다섯. 넷째 줄 넷.

열아홉.


PDA에는 20이라고 떠 있다.

정 사원은 화면을 본다. 그리고 박스를 본다. 다시 화면을 본다.

숫자가 다르다.


선배가 옆을 지나며 말한다.

"정 사원, 그냥 20으로 올려. 하나 차이 누가 알아."

정 사원은 고개를 젓는다.

"19개예요."

"어차피 오차 범위야."

"19개예요."

선배는 어깨를 으쓱하고 간다.


정 사원은 PDA에 입력한다. 입력.


$$재고 불일치 — 사유를 입력하세요$$

그는 사유를 적는다. '실물 확인 결과 19개.'


그는 생각한다.

시스템이 20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19개가 있다. 내가 세었다. 내 손이 짚었다. 내 눈이 보았다.

세지 않으면 모른다. 시스템이 말해줘도 모른다. 직접 세야 안다.


정 사원은 다음 팔레트로 간다.

라면. 시스템에는 50박스.

그는 다시 센다. 하나, 둘, 셋.


오후가 된다.

정 사원이 센 숫자들이 시스템에 올라간다. 어떤 것은 맞았다. 어떤 것은 틀렸다. 틀린 것은 고쳤다.

창고의 숫자가 정확해진다.


퇴근 시간.

정 사원은 PDA를 충전기에 꽂는다. 오늘 하루 그가 센 것들. 음료, 라면, 과자, 생수. 수백 개의 박스. 수천 개의 숫자.

누군가는 귀찮다고 할 것이다. 시스템을 믿으면 되는데.

하지만 정 사원은 안다.

시스템은 입력된 것만 안다. 진짜를 아는 것은 센 사람이다.


그는 창고를 나선다.

내일도 셀 것이다. 모레도. 그다음 날도.

그것이 그의 일이다.

확인하는 것. 의심하는 것. 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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