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창고를 주제로 한 상생교향곡
제3악장-철학

제6편 헤겔

by 신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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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딪혀야 나아간다


물류가 터졌다.

명절 전날. 평소의 세 배. 트럭이 연달아 들어왔다. 창고 통로가 막혔다. 박스가 쌓이고 또 쌓였다.

김 팀장은 입구에 서서 본다. 혼란이다.


직원들이 소리친다.

"이쪽 먼저요!"

"아니, 냉장이 급해!"

"길 막지 말고 비켜요!"

목소리가 겹친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 각자 자기 구역만 본다.


김 팀장이 소리친다.

"멈춰요!"

모두가 멈춘다. 박스를 든 채로. 카트를 민 채로.

창고가 조용해진다.


김 팀장이 말한다.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직원 하나가 묻는다.

"그럼 어떻게요?"

"바꿔야죠."


모두가 바닥에 앉는다.

팔레트 위에, 박스 위에. 김 팀장이 종이를 펼친다.

"지금 레이아웃은 카테고리별이에요. 음료는 음료끼리, 과자는 과자끼리."

"네."

"오늘은 안 돼요. 물량이 너무 많아요."


신입 민지가 묻는다.

"그럼 어떻게 나눠요?"

김 팀장이 답한다.

"속도로요."

"속도요?"

"빨리 나가야 하는 것. 천천히 나가도 되는 것. 그걸로 나눠요."


직원들이 웅성거린다.

"기존 규칙을 다 깨는 건데요."

"헷갈리지 않을까요?"

김 팀장이 고개를 젓는다.

"기존 규칙이 오늘을 못 버텼잖아요. 안 되는 건 바꿔야죠."


새 규칙이 적용된다.

냉장·냉동이 입구 쪽으로. 상온은 안쪽으로. 당일 출고는 통로 옆에 따로.

직원들이 움직인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손이 헷갈린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자 흐름이 생긴다.

막혔던 통로가 뚫린다.


밤 11시.

마지막 트럭이 나간다. 창고가 비었다.

김 팀장은 텅 빈 통로를 본다. 아침에는 지옥이었다. 지금은 깨끗하다.


민지가 옆에 온다.

"팀장님, 이 규칙 계속 쓸 거예요?"

김 팀장이 답한다.

"아니요."

"왜요? 잘 됐잖아요."

"오늘은요.

하지만 어쩌면 내일은 또 달라질 거예요."


그는 생각한다.

오늘의 규칙이 내일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또 바꾸면 된다.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만들고.

그것이 방법이다.


김 팀장은 창고 문을 닫는다.

내일 또 물량이 온다. 또 부딪힐 것이다. 또 바꿀 것이다.

괜찮다.

부딪혀야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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