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편 비트겐슈타인
새벽 5시. 냉장창고.
김 사원이 PDA를 본다. 오늘 업무: '우유 로테이션.'
그는 잠시 멈춘다. 로테이션. 교대. 순환. 사전에서 본 뜻이다.
우유를 교대한다? 무슨 말이지?
박 주임이 다가온다.
"뭐 해. 로테이션."
"네. 근데... 이게 뭘 어떻게 하는 건가요?"
박 주임이 한숨을 쉰다.
"따라와."
우유 선반 앞에 선다.
박스가 줄지어 있다. 앞줄, 뒷줄.
박 주임이 앞줄 박스를 가리킨다.
"이거 유통기한 봐."
"12월 3일이요."
"뒷줄은?"
"12월 7일이요."
박 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새로 온 건 뒤로. 오래된 건 앞으로. 앞에 있는 게 먼저 나가게."
"그게 로테이션이에요?"
"그게 로테이션이야."
김 사원이 박스를 옮기기 시작한다.
뒷줄 것을 빼고. 새 박스를 넣고. 기존 것을 다시 앞에 놓고.
단순하다. 하지만 순서가 있다.
박 주임이 옆에서 본다.
"왜 이렇게 하는지 알아?"
"유통기한 때문에요?"
"그것도 있어.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박 주임이 우유 박스를 툭 친다.
"이거 사 가는 사람이 있어. 아침에 애한테 줄 사람. 커피에 넣을 사람. 그 사람들이 오래된 거 받으면 안 되잖아."
김 사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로테이션은 그냥 박스 옮기는 게 아니야."
박 주임이 말한다.
"신선한 거 먼저 주겠다는 약속이야. 우리가 여기서 매일 하는 약속."
김 사원은 다시 박스를 든다.
이번엔 다르게 느껴진다. 그냥 옮기는 게 아니다. 순서를 지키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난다.
우유 선반이 정리됐다. 앞줄에 12월 3일. 뒷줄에 12월 7일. 순서대로.
김 사원이 PDA에 완료를 입력한다.
'우유 로테이션 완료.'
그는 생각한다.
아까는 몰랐다. 로테이션이 뭔지. 사전에는 '순환'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여기서 로테이션은 박스를 옮기는 방식이고, 유통기한을 지키는 규칙이고, 고객에게 하는 약속이다.
같은 단어인데 다른 뜻이다. 여기서만 통하는 뜻이다.
다음 구역으로 간다.
요구르트. PDA에 '로테이션'이 또 떠 있다.
김 사원은 이제 묻지 않는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