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두려운가요?

심장이 빨리 뛰나요? 그건 좋은 거예요. 단. 부정맥은 제외.

by 김주시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데.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안전한 거야?"

"응. 그럼. 심장이 뛴다는 건 네가 지금 이곳에 살아있다는 거야. 기억해. 끝까지 달리기만 해. 마지막까지 발을 멈추지 마. "


- Pokhara, Nepal. 패러글라이딩 전 옷과 안전장비를 입혀주던 소년이 겁먹은 나에게.




나는 겁이 많다. 사람들은 겁이 많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고 이것저것 도전할 수 있냐고 하지만, 난 정말 겁이 많다. 사람 많은 곳은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밝으면 또 너무 밝아서, 물속, 하늘, 산속 두렵지 않은 곳이 없다. 심장은 빨리 뛰고 숨이 찬다. 당장 포기해버리고만 싶다. 가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눈물도 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두려움은 남들 눈엔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의 두려움을 남들이 알아채는 건 또 싫다.


유아풀장만 들어가도 허우적거리는 내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딴 것도, 산이라고는 질색하던 내가 유명 트레킹 장소는 열심히 찾아다녔던 것도 (물론 현재는 산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높은 곳만 가면 숨이 차는 내가 패러글라이딩을 턱 하니 예약했던 것도 사실은 모두 남에게 겁 많은 나를 숨겨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지인들은 내가 퍽이나 용감하고 두려움이 없다 생각하지만 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의 여행은 온통 지질함의 역사다. 스쿠버 다이빙 첫 교육 날. 비치 다이빙 겨우 5m를 들어갔다가 그대로 수면으로 뛰어올라와(매우 위험한 거다) 환불해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제발 나를 땅으로 데려가 달라며 애원하는 바람에 강사님의 진땀을 빼기도 했고, 호도협 트레킹 마지막 날에는 호기롭게 혼자 길을 나섰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엉엉 울어댄 바람에 앞서 가던 중국 친구들이 1시간을 기다려 끌고 같이 내려가 준 적도 있고, 일출을 보겠다고 엘 찰튼을 새벽에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다 같이 올라가다가 어둠이 너무 무서워 난 도저히 못하겠다며 떼를 쓴 적도 (심지어 내가 주도해 모은 그룹이었으니 말 다 했다) 있다. 그래도 나는 결국 PADI 어드밴스 자격증을 땄고, 헉헉대면서도 무사히 호도협 2박 3일 트레킹을 마쳤고, 일출은 못 봤어도 엘 찰튼의 빙하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건배를 할 수 있었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길거리의 패러글라이딩 사진을 보고 턱 하니 예약해버린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사실 성수기의 포카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일 구름 가득한 하늘에, 엽서 속에만 존재하는 마차푸차레의 위용 따위 느낄 수 없는 나날이었다. 그저 매일 호수에 나가 보트를 타거나 박물관이나 기웃거리던 내가 갑자기 다음날의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덜컹거리는 차 속에 있었고 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장비를 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갑자기 두근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신 파일럿이 운전하는 비행기라던지, 가장 사고율이 높다는 괴담 수준에 가까운 네팔의 하늘이 갑자기 두려웠다. 내 장비를 채워주는 아이는 많아 봤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작고 마른 남자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내 생명줄이라도 된 듯 붙잡고 여러 차례 이게 정말 괜찮은 게 맞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은 아이는 담담하게도 말했었다. 심장이 뛰는 건 좋은 거라고. 그 말이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고맙다는 말을 몇 차례 한 뒤 주책스럽게 아래서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말까지 하고는 나는 열심히 뛰어 하늘로 날아올랐(천천히 추락을 시작했)다.


[순간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하늘을 날다.]


몸이 부웅~ 떠오르던 순간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구름이 잔뜩 있던 찌푸린 날이었어서 기대했던 히말라야 산맥을 파노라마로 보는 것은 실패했지만, 하늘을 날고 있다는 그 생생한 느낌 하나만으로도 내 도전의 가치는 충분했다. 습기 가득한 공기, 쿵쾅대는 심장소리, 흡사 노랫가락 같은 바람소리가 뒤섞인 그 순간, 내 삶에 진정으로 감사했다. 내 뒤에서 가이드 해준 톰 아저씨는 "아 유 오케이?"를 몇 번 묻더니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있는 날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안전한 (우당탕탕 넘어졌지만 다치지는 않았던) 착지 후 산꼭대기에서 보았던 소년이 멀리서 나에게 엄지를 치켜들어준다. 굿 러닝이었어! 잘했어. 꼬마에게 받은 칭찬이었지만 삶의 순간순간 두렵고 혼자인 것만 같은 때 문득 떠올리게 된다. 잘했어. 두렵더라도 발을 멈추지 마. 끝까지 뛰면 되는 거야.



덧붙임.

그렇지만 심장이 빨리 뛴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불규칙적인 맥박이 느껴지거나, 가슴통증이나 어지러움, 호흡곤란이 동반된다면 부정맥일 수 있으니 바로 가까운 내과로 뛰어가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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