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누가 더 가까운가요?

모릅니다. 그렇지만 메멘토 모리.

by 김주시

"우리의 걸음은 아주 느리지만 죽음과는 가까워. 넌 아주 똑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 너의 남은 인생에서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길 빌어. "


- Kutna Hora, Czech Republic. 같이 버스투어 한 제임스 할아버지와 콘 할머니. 파일럿과 승무원으로 만나 50년을 같이 사셨다고 한다.




직업 때문에 나는 꽤 죽음을 많이 바라볼 수 있었던 편이고 덕분에 평상시에도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엄청난 철학적 사유를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여러 죽음을 가까이, 혹은 멀찍이서 바라보면서 현재의 삶을 잘 살아보고자 늘 다짐하지만 나는 어찌나 평범한 인간인지 돌아서면 모든 걸 망각하고 작은 것에 화가 나고, 자주 게으르고, 지질 거리는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다.


때는 일이 한창 바빴던 가을. 나의 게으름은 정도를 넘어 휴가 날짜 바로 전날까지 아무런 계획이 없이 일만 하다가 다음날 체코 프라하행 비행기를 덜컥 사버렸던 것이다.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 내가 아는 정보라곤 "도브 리덴~(인사)" 뿐. 미리 공부해둔 정보도 없는 데다 오랜 비행과 그동안 일하면서 쌓여왔던 피로에 본격적인 관광은 불가능했다. 그저 느지막이 일어나 맛있어 보이는 걸 먹고 산책하길 3일째. 구도심 길이 익숙해질 무렵, 내일은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관광회사 유리창에 붙은 해골로 가득한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내일 아침 출발하는 쿠트나 호라행 관광버스. 내일 할 일도 없는데 가격도 싸고 하니 그냥 예약해보지 하는 생각에 급한 예약을 마치고 다음날 모임 약 속지로 나갔다.

중국인들과 미국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가득한 자그마한 15인승짜리 관광버스. 더듬거리지만 열정적인 영어를 구사하는 50대 가이드 아주머니의 설명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급히 구글로 어떤 장소인지 검색해보고 깃발을 따라 노부부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데 다들 어찌나 느리던지. 악몽 속에서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려 하는데 빨리 뛸 수 없는 저주에라도 걸린 듯 다 함께 느릿느릿 목적지로 향했다.


[실제 유골로 꾸며진 성당. 음침하고 무서운 느낌보다는 잘 꾸며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쿠트나 호라는 이른바 해골성당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다. 흑사병으로 죽은 이들의 유골로 장식한 아주 작은 성당은 대략 4만 구 정도의 유골로 장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했다. 샹들리에부터 십자가, 작은 받침 하나까지 전부 유골로 장식된 공간. 뭔가 어두침침하고 무서울 거란 내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밝은 느낌에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놓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성당을 구경한다는 느낌보다는 유골들이 전 세계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깔깔거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슬쩍해보았다. 휘리릭 둘러보고 나오던 중 같은 관광버스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미국인 노부부가 말을 건다.

"우리 다리 아파서 다른 곳은 못 보겠어. 맥주나 한잔 하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

성당 이외 그다지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닌 작은 마을이었기에 선뜻 오케이하고 작은 맥주집의 발코니에 자리 잡는다.



노부부는 80대로 모든 움직임이 느렸는데 특히 할아버지의 볼록 튀어나온 배와 선한 웃음이 주토피아의 나무늘보를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부부였다. 프라하에서만 한 달을 묵으며 매일 천천히 걸어 다니는 중이라는데 나도 프라하에서만 며칠째 게으름 피우는 도중이라고 하니 우리들은 통하는 게 있을지 한눈에 알아봤다며 껄껄 웃는다. 많은 수의 유골을 막 보고 나와서인지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우리 중 누가 가장 죽음과 가까울지에 관한 반 농담 섞인 유쾌한 대화가 오간 뒤 할머니가 웃으며 한마디 한다. 그래도 이렇게 다른 세상, 다른 시간을 살던 우리가 잠깐 맥주 한잔을 나누며 서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게 삶이지. 죽음이 있다는 걸 기억하며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거야. 유쾌한 아가씨. 아가씨의 삶에 축복이 있기를.


모든 이는 죽는다. 어떨 때는 너무나도 쉽고 허망하게. 두렵지만 그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이 명제는 사실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유한하기 때문에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하나뿐인 내 인생을 즐겁게,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모두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덧붙임.

사실 이 당시 휴가 때 마음이 참 복잡했었는데, 짧았던 대화가 큰 위안이 되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나 조언보다 완전한 타인의 한마디에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Be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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