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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Mar 27. 2023

"속초 앞바다에서 디올 선글라스를 찾습니다."

사업을 잠시 쉬게 되면서 여가시간이 많아졌다. 거의 만 3년 만에 갖게 되는 자유시간이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고금리, 고물가시대에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소상공인들이 힘들어하고 있어 아예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갈 생각이다.


시골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은 운동으로는 매일 아침 산보를 꼽을 수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상관없이 일 년 365일 아침산보를 거르지 않았다. 심지어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었을 때조차도 산보를 빼놓지는 않았다. 아침 산보는 나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산보가 생활에 가장 큰 활력인 태리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이기에 하루도 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 산보 이외에는 하루 2시간씩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데 게이트볼은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단체운동이다 보니 상대적인 운동량이 적어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근력운동인 헬스도 좋지만 무거운 중량을 드는 것이 부담되어 운동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배드민턴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근방에는 배드민턴장이나 배드민턴클럽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 시작하게 된 운동이 바로 수영이다.


코로나 때 폐장되었던 수영장이 다시 개장을 했다. 면에 있는 국민체육센터를 방문해 보니 오래전 수영강습을 받고 매일처럼 새벽수영을 하고 출근하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물에 뛰어들고 싶다는 작은 충동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한 달 강습 신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쇼핑몰로 수영복과 수영모를 주문했다.


이제 다음 달 월요일 아침부터는 정말 오랜만에 수영장 레인에 들어가 자유형을 또 평영을, 배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접영까지 할 수 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주 오래전 속초해수욕장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는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여름캠프와 겨울캠프를 개최했다. 나는 각 캠프에 행사주최자 측을 대표해서 행사진행을 맡고는 했다.


그해 여름 캠프는 속초해수욕장 인근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일부 대학생들을 인솔해서 속초해수욕장을 갔더랬다. 깊은 곳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는 백사장 벤치에 앉아서 주로 안전관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중에서 게임들을 하고 잠시 자유시간을 주었을 때였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에 친구들이 모여있고 한 여학생이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여학생이 어디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달려가 보니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학생 왜 울어? 무슨 일이라도 있나?”

“…”     


학생은 우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변에 있던 학생이 대신 대답했다.     


“선생님, 이 친구가 선글라스를 잃어버렸대요.”

“선글라스야 잃어버렸으면 다시 사면되지 않아?”  

   

“잃어버린 선글라스가 이 친구 것이 아니라 어머니 것을 몰래 가져왔대요.”

“바다에서 잃어버린 걸 어쩌겠어. 어머니한테 사실대로 말씀드려야지.”     


“잃어버린 글라스가 디올이래요.”

“디올?”     


디올이 얼마나 좋은 브랜드인지 모르지만 고가품이라는 사실은 남자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좀 안되기도 했다. 모처럼 여름캠핑에 친구들에게 자랑도 할 겸 어머니가 아끼던 고급 선글라스를 가져와서 뽐냈는데 그걸 그만 잃어버렸으니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한테 혼날 것은 뻔한 일. 나는 디올 선글라스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학생 내가 한번 찾아볼게. 그런데 이거 바닷속에서 선글라스를 찾는 일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이제 그만 울고 기다리도록 해.”     


나는 학생을 진정시키고 잃어버린 장소를 물어보았다. 학생은 바다 반대편으로 늘어선 상가의 일정 블록을 설정했고 이로써 선글라스의 대략적인 분실지점이 구획됐다. 학생들을 모두 해변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한 군데에 모여있도록 했다.      


나는 당시 취미로 아침 수영을 하던 때라 수경을 갖고 있었다. 나는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학생이 가르친 방향으로 수영해 들어갔다. 수경을 쓴 채로 물 위를 수영하며 바닥을 살펴보았는데 얕은 물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상 썰물이 시작된듯하여 선글라스가 조류로 인한 물결을 따라 바다 쪽으로 조금씩 이동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나는 조금씩 깊은 물로 탐색지역을 넓혀갔다. 


물이 깊어지면서 수경을 써도 물 위에서는 바닥 확인이 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초과호흡’을 했다. 초과호흡이란 말 그대로 숨을 평소보다 깊게 들이마셨다가 깊게 내쉬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다소 위험하기는 하지만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다. 나는 바닥까지 잠수하여 바닥을 더듬으면서 찬찬히 선글라스를 찾아보았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디올 수색작업'이 계속됐다. 


그러나 역시 깊고 넓은 바닷속에서 선글라스를 찾는다는 것은 수영장에서 바늘핀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썰물시간대라서 더 깊은 곳으로 가면 위험해지기 때문에 부득이 선글라스 수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잠수하고 나가자. 나도 할 만큼은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초과호흡을 깊게 하고 잠수해 들어갔다. 바닥까지 잠수하여 손바닥으로 더듬으며 수색을 하는데 뭔가가 손가락에 턱 걸리는 것이었다. 바로 선글라스였다. 순간 “아 이 선글라스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나는 수면으로 떠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수영을 해서 해변으로 나왔다. 그리고 의기양양 선글라스를 높이 쳐든 채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선글라스를 보며 박수를 치는 학생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고 있던 여학생의 환한 미소…


그 여학생은 어머니에게 혼이 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오랜 시간 속초 앞바다에서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디올 선글라스를 추억했을 법도 하다.     


그때 그 여학생도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됐겠지. 한번 얼굴을 보고 속초 앞바다에서 찾은 디올 선글라스 얘기를  해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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