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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와 함께라면 Apr 03. 2023

'금천의 주산' 호암산에 오르니 “호랑이가 어흥!”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호암산 등산을 위해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은 잘 알지만 “삼성산이나 호암산을 아느냐?”라고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호암산(虎岩山)은 해발 315미터(정상의 높이가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있어 금천구청의 표기에 따른다)의 야트막한 산으로 관악산이나 삼성산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호암산은 금천구민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의 시민들에게 맑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허파이자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는 보물과도 같은 산이기도 하다.      


산행기록을 살펴보니 2009년도에도 한번 삼성산과 관악산의 연계산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살 때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서 무박원정을 가거나 주로 지방에 있는 명산들을 다니느라 서울에 위치한 산들은 비교적 자주 등한시 했는데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우들끼리 편안하게 회포를 풀 수 있는 호암산으로 산행코스를 잡게 되었다.      


산행기점은 석수역으로 잡았다. 석수역 1번 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 내려오면 바로 앞에 낯익은 브랜드의 빵집이 하나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만나 진한 모닝커피와 바케뜨빵으로 브런치를 대신했다. 산행을 끝내고 늦은 점심을 들기로 했으므로 배낭에는 물과 간단한 행동식만 지참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훌훌 떠나는 산행이다.     


사실 되돌아보면 그동안 얼마나 치열한 산악활동을 해왔는가? 서울 종로구 하고도 사직동에서 태어난 덕에 늘 인왕산(338m)을 앞마당처럼 넘나들었고 대학에 다닐 때에도 전국의 숲길들을 다녔으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전국의 명산은 거의 빠짐없이 순례했다. 그리고 또 100km가 넘는 장거리 무박산행과 10년에 가까운 암벽등반과 백두대간 왕복 종주. 히말라야 원정산행까지.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커다란 산행들을 잘 마친 것이 늘 감사할 뿐이다.     


산속의 공중화장실 너무 깨끗해서 놀라     


느지막이 오전 10시 반 경 빵집을 출발하여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산행기점인 호암산 숲길공원이 나타난다. 이곳에 공중화장실이 있어 볼일을 보았다. 화장실이 참 깨끗하다. 지금까지 30여 개 국을 여행해 봤지만 이렇게 깨끗한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유럽만 해도 기차역에서 돈을 내고 사용하는 화장실이 적지 않은데 그런 화장실에 비교해서도 훨씬 더 깨끗하다. 화장실을 관리하는 금천구청과 화장실을 이용하는 구민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지하철 1호선 석수역에서 하차하면 1번 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호암산행의 기점이 되는 호암산숲길공원이 나타난다.

  

등산로 초입에 자연경관과 썩 잘 어울리는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공원은 물론이요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준비되고 관리되고 있어 산을 아끼는 한 사람으로 흐뭇하기만 했다.

우리는 곧 호압사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관악산에서 시작하여 호암산, 석수역으로 연결되는 서울둘레길 5코스의 일부 구간으로 거리는 약 3.7km.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월영암-호암산성-한우물-석구상-호암산-호압사-칼바위-잣나무산림욕장-호암산폭포 등 멋진 명소와 역사유물을 즐길 수 있는 알찬 산행코스이기도 하다.      


등산로 옆에 있는 ‘무장애길’이라는 것도 처음 보았다. ‘무장애길’이란 말 그대로 장애가 없는 길이라는 의미로 노약자와 어린이는 물론 임산부와 휠체어 이용자까지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폭 2m, 경사도 8% 미만의 완만한 목재데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얼마나 훌륭한 배려인가? 이 무장애길은 ‘호암늘솔길’로 부른다고 한다.      

이 길이 바로 '무장애길'이다. 누구나 편하게 자연과 산과 계곡을 즐길 수 있게 만든 배려가 아름답다.
잣나무산림욕장에 들어서면 휘튼치트향이 가득 쁌어져나오고 마음마저 상쾌해 진다.

    

잣나무산림욕장에도 무장애길이 쭉 연결되어 있다.


일부만 남아있는 유적지 호암산성, 꼭 복원되길


한우물 전망대로 올라서니 금천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칼바위도 나타난다. 자연이 바윗돌을 칼로 벼린 솜씨가 놀랍다. 그리고 곧바로 나타난 호암산성.    

 

호암산성은 금천구의 주산인 호암산 정상을 둘러쌓은 석축산성이다. 둘레가 1,547미터에 이르고 면적이 무려 133.790평방미터이니 무려 4만 5백 평에 이른다. 이 산성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에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축조되었고 당시 양천고성-행주산성-오두산성을 잇는 거점성곽이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때에는 무려 중국무역의 경유지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도 조정의 군사가 주둔했다고 한다.     

자연이 바위로 벼린 날카로운 칼날 칼바위. 칼끝이 제법 서늘해 보인다.


호압산성 안에 위치한 한우물. 이 산 중에 어떻게 이렇게 큰 우물을 팔 수 있었을까?  수천 명이 식수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큰 규모에 놀란다.
이 석상이 바로 석구상이다. 호암산의 남쪽에 묻은 개의 상이라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개보다는 해태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산성 안에는 커다란 우물이 두 개나 있었는데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한우물’을 바라보자니 임진왜란 최대의 전투로 손꼽히는 울산성전투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일화가 떠올랐다. 조명연합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고사직전에 놓인 왜군은 성 내에 우물이 하나도 없어 생쌀을 먹고 말을 죽여 말고기와 피를 먹는 것은 물론 전투 후반부에 들어서는 사람의 피와 오줌까지 마셨다고 한다.      


가까스로 일본으로 탈출한 가토 기요마사는 훗날 구마모토 성을 축조하면서 성 내에 우물을 수백 개나 파고 다다미에는 된장에 조려 말린 토란 줄기를 넣어 비상식량으로 준비했다고 하니 물과 식량부족으로 고통당한 울산성전투가 뼈에 사무쳤던 모양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호암산성은 지금 흔적만 남아있을 뿐 원래의 모습이 복원되어 있지 않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성처럼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우물 지나서 바로 석구상(石拘像)이 있다. 석구상에는 그럴듯한 유래가 있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려고 하는데 호암산의 모습이 마치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닮아서 호랑이의 기운을 눌러야 하므로 바위의 북쪽에는 돌로 만든 사자를 묻고 남쪽에는 돌로 만든 개를 묻었다는 것이다.      


정상석 없어 아쉬운 금천구의 주산 호암산 정상     


석구상을 지나가면 국기대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호암산의 정상이다. 호암산숲길공원 출발지에서 정상까지는 느린 발걸음으로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땀 흘려 올랐는데 호암산 정상에는 아쉽게도 정상석이 없다.      

정상석 없는 호암산 정상. 금천구의 주산이요 금천구민은 물론 수도권 시민들의 안식처인데 정상석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호암산 정상의 조망이 장쾌하다. 국기봉이 있는 호암산 정상에서 바로 건너편으로 삼성산과 그 너머 기상대가 있는 관악산까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호암산의 대부분은 금천구에 속해있는데 정상 부위만 관악구여서 정상석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아차산 역시 정상 부위는 구리시여서 정상석이 없고 상징석은 아차산 초입에 위치해 있다.     


정상석이 있거나 말거나 조망이 대단히 좋다. 멀리 삼성산과 그 너머로 관악산도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잠시 속세를 떠난 마음이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는 듯도 하다.


호암산에서 하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이내 호압사에서 발걸음이 멈춰진다. 호압사 창건 설화중에는 조선건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다. 태조 이성계 시대에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밤마다 괴물이 나타나므로 무학대사의 조언을 받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호압사 터에 사찰을 짓고 지세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역시 석구상의 존재와도 연관성이 있다.      

1393년(조선태조 2년) 무학대사가 창건한 호압사. 호랑이의 꼬리의 위치에 해당한다는 호압사. 호암산과 호압사는 이래저래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가 많다.
호압사는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로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 석약사불좌상이 있다.

오래전 호압사를 방문했을 때에는 작은 암자의 규모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제법 규모 있는 사찰로 변모해 있었다. 참 재미있게도 호압사 경내 한쪽 견에 커다란 호랑이 상이 있어 이래저래 호압사는 호랑이와 연관이 깊은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산행을 마치고 독산동 우시장골목으로 하산길을 잡으면 싱싱한 소고기와 부속물로 산행으로 지친 피로를 한방에 해소할 수 있다.

호압사부터는 무장애길인 호암늘솔길을 따라 전망쉼터를 지나 호암산폭포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그곳에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금천체육공원과 문교초등학교를 지나 독산동 방면으로 하산했다. 몹시 허전해진 뱃속을 채우고자 유명한 독산동우시장골목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산행시간은 모두 네 시간 반이나 소요되었고 오랜만의 산행에 발목이 시큰해져 왔지만 정육식당에서 싱싱한 소고기를 구워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안에서는 군침이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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