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들고 갈 가방을 마련했다. 그리고 가방 속에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 그리고 샤워 후에 사용할 샴푸와 로션까지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눈에 뜨인 책상 한구석에 쌓인 동전들.
오래전에는 일상생활에 동전이 필수적이어서 동전주머니를 들고 다닌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핸드폰이 출현하기 전 10원짜리 동전은 공중전화를 할 때 필수적이었다. 급한 전화를 걸려고 길게 늘어선 공중전화 줄을 기다리며 한 통화에 20원인 공중전화요금이 모자라지나 않을지 주머니를 탈탈 털고 동전을 모아 손에 쥐고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까짓 50원짜리 동전
버스요금을 현찰로 받던 시절 버스요금은 물론이고 은행에 공과금을 납부할 때도 끝전까지 맞춰 10원짜리 동전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 커피자판기도 1980~90년도에는 큰 인기를 누렸다. 요즘 흔히 말하는 ‘인싸’가 되려면 100원짜리 동전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가 친절하게 커피를 빼주면 말을 섞기도 쉬웠다.
그런데 지금은 거스름돈이나 받을 때 만나게 되는 동전. 한번 받은 동전은 책상 귀퉁이나 책상서랍이나 어느 한 구석에 모여 쓸쓸히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동전들. 그중에도 소액동전인 50원짜리 동전 한 닢 때문에 친구를 잃었던 쓸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세월을 거슬러 내가 초등학교에서 수영강습을 받을 때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에서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육교를 넘어 큰 도로를 건너고 공원으로 들어가 문화재가 있는 사적지를 지나 엄청나게 긴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그런데 학교를 갈 때마다 지나가던 공원에 커다란 수영장이 생기게 되었고 그 수영장은 학교 뒤편 인왕산 이외에는 갈 곳이 없는 우리들에게 대단한 로망을 안겨줬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수영장에서 우리들을 위한 강습이 시작됐고 그 즉시 나는 강습을 신청했다.
당시 실명이 ‘준’이었던 친구와는 같은 반이었고 수영강습도 같이 받는 사이여서 가깝게 지냈다. 또 얼마 안 있으면 준의 생일이어서 나는 그 생일에 초대될 것이라는 기대에 더욱 돈독하게 지냈던 것 같다.
벼이삭이 그려진 참신한 동전의 출현
당시 동전은 모두 세 종류 즉 100원짜리 10원짜리 1원짜리 세 가지가 유통되었는데 1972년도에 50원짜리 동전이 새롭게 발행되고 통용이 되기 시작했다. 크기는 100원짜리나 10원짜리 동전보다 작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은화에 속했으므로 더 귀해 보였다. 표면에는 세종대왕이 아니라 벼이삭이 그려져 있어 상큼하게 보이기도 했다. 어떤 물건이나 그렇듯이 50원짜리 새 동전은 초창기 무척 귀한 편에 속했다. 더군다나 초등학생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50원짜리 동전을 여러 개 가져와서 우리 형제들에게 보여주셨고 감사하게도 나도 50원짜리 동전 하나를 손에 쥐게 되었다. 나는 작은 동전주머니에 50원 동전을 잘 간수했다. 내일 친구들에게 실컷 자랑할 생각을 하면서.
문제의 그날이었다. 수영장에서 수영강습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자물쇠가 달려있는 보관함 같은 것은 없었고 사람이 맡아주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입었던 옷은 그냥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한 군데에 모아놓고는 했다.
나는 내 바구니를 찾아 주머니에서 50원짜리 동전을 꺼냈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같이 수영강습을 받던 친구들이 모두 몰려와서 이 신기한 50원짜리 동전을 구경하고 서로 만져보려고 했다. 나는 절로 어깨가 으쓱했다.
그때였다.
사라진 50원 동전은 어디에?
“내 50원짜리 동전이 없어졌어”
준이였다. 공교롭게도 준이도 당시 갓 발행되어서 귀했던 50원짜리 동전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 동전을 수영강습받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변했다. 준이가 50원짜리 동전을 갖고 있다가 잃어버렸는데 내가 50원짜리 동전을 갖고 있다? 마치 내가 준이의 50원짜리 동전을 훔친 것과 같은 의심을 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준이는 바구니를 한참 뒤져보며 50원 동전을 찾아보다가 시무룩해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 뒤에 예정되어 있던 준이의 생일잔치에 나는 초대되지 못했고 그 생일잔치에 초대된 친구들로부터 “너는 왜 안 왔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준이는 내가 준이의 50원짜리 동전을 훔쳤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왜 그 동전이 원래부터 내 동전이었다고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을까? 50원짜리 동전이 분명히 내 것이라는 사실은 당시에 같이 50원짜리 동전을 나누어 받은 형이 증언해 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정서적으로 모든 것이 성숙되지 못하고 단순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쉽게도 50원짜리 동전 하나 때문에 친한 친구 한 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50원 동전 한 닢의 가치란?
그런데 1972년도에 50원의 가치는 어느 정도였을까?
1972년도 매일경제신문에 게재된 소비자물가. 펩시와 코카콜라가 10원 올라서 50원이 됐다.
1972년도 매일경제신문에 난 소비자물가를 보니 50원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한 병에 50원, 화장비누가 50원, 세탁비누가 40원, 우편요금이 1통당 10원, 전보요금이 50원, 일반버스 대인이 20원, 좌석버스 대인이 30원, 당시 고급담배인 신탄진 한 갑이 60원, 커피 한잔이 50원, 목욕탕 입장료가 80원, 곰탕 한 그릇이 100원, 가락국수 한 그릇이 50원 수준이었다.
굳이 지금의 가치를 따진다면 서울버스요금 현금기준으로 1972년도가 20원(일반버스) 2024년도 현재 요금을 1300원(현금가)으로 잡으면 대략 65배 정도가 올라 약 3,250원의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당시에 신권으로 발행된 주화였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있었다고 봐야겠고 지금 당시의 1972년도 50원 주화를 구입하려면 약 15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제는 찾아보려야 찾기도 어려운 50원짜리 동전, 그리고 그 동전 때문에 멀어져 간 친구야.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네가 잃어버렸던 그 동전, 꼭 찾아서 너에게 다시 전해주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