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의 가수 故 현미를 추모하며
가수 현미의 노래 여러 곡을 들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
그날 밤 그 자리에
둘이서 만났을 때 똑같은
그 순간에 똑같은 마음이~
보고 싶은 얼굴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밤안개
밤안개~~가 가득히
쓸쓸한 밤~~~~거리~
밤이 새도록
가득히
무심한 밤안개~~~
님 생각에 그림자 찾아 헤매는 마음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나는 간~~~다.
무려 1962년도에 발표되었던 노래가 60여 년이 지나도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 가수 현미와 만나서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다. 당시에 역술에 관련된 책을 내고서 잠시 유명세를 얻었을 때였는데 sbs의 70분 프로그램에 패널로 같이 출연하면서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무척 센세이션 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사회는 송지헌 씨가 봤고 여섯 명의 출연자 중에는 현미 씨 외에도 조경철 박사 등이 있었고 통계조사자로 지금 국민의힘에서 일하고 있는 김행 씨가 출연했는데 당시에는 중앙일보 조사부 기자였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30대였고 그는 50대 중후반으로 나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은 연상이었는데도 친구같이 소탈하고도 겸손해서 누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격자체가 꽉 막히지 않아 털털하고 낙관적인 것 같았다.
당시 현미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예전에는 역술인들을 무수히 만났다고 했다. 그는 운명을 믿는다고 했다. 또 궁합도 믿는다고 했다. 인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며 결혼도 서로 합이 맞아야 행복한데 서로 만나 상대의 기운을 빼앗기만 하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물과 불이 만나면 상대를 쇠하게 한다는 이른바 오행(五行)의 원리였다.
방송사에 근무했던 터라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마주치기는 했지만 인사 정도만 나누었고 나는 그를 기억해도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리라. 당시에도 워낙 왕성한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터이니.
훗날 내가 그의 인생여정을 살펴보게 되었을 때 왜 그가 신앙인이었으면서도 운명론자가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풀렸다.
그 자신의 삶이 극단적으로 운명적이었던 것이다.
이봉조는 1987년도 56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데 그때까지 현미만을 생각했다고 하니 신부를 속이고 두 번이나 결혼한 그의 기행이 이해될 듯도 하다.
현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 잘생긴 사람이 말라서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날 안 받아 줄 거냐' 해서 내가 다시 모실 거니까 건강하게 살자”고 했지만 곧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되었나 보다"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