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의 모든 발걸음은 뜀박질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나는 그리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어린 걸음으로 삼십 분이나 걸리던, 그렇게나 가기 싫던 등굣길일지라도 항상 달음박질을 하며 갔습니다. 아마 그것은 어릴 적 봤던 만화영화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여 시간을 돌리는 주인공을 보며 시간을 앞당길 수도 있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너무 어렸던 나는 방향도 모르고 무작정 뛰었습니다. 애당초 방향 따위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달리면 시간도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자주 넘어졌었습니다. 항상 바지의 무르팍 부근은 해져있었고 그 안쪽, 어린것의 뽀얀 살결은 찢어져 피가 마르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또 뛰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어린 나는 참으로 일찍 잠들었었습니다. 잠을 자면 시간을 넘기는 기분이 들어 항상 일찍 눈을 감았습니다. 해 질 녘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다가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부름에 또 계단을 열심히도 뛰어 올라가 밥을 먹고, 부른 배를 쓸으며 아버지가 보시는 티브이를 아무런 생각 없이 봅니다. 이불이 깔리고, 등이 꺼지고, 티브이 소리는 줄어듭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과 안에서 새어 나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을 듣다가 잠에 듭니다. 가끔, 운이 좋으면 티브이 속 주인공이 되는 꿈을 꿀 수도 있었지요.
어린 나는 하루, 한시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낮엔 뛰고, 밤엔 잤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무언가 인생 중요한 부분들이 누락된 채 덩그러니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어른이 되어선 안 될 사람이 어른의 탈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아 괴롭습니다.
어린 나는 장래희망이랄 것이 딱히 없었습니다. 그저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설문지에 장래희망을 묻는 삼 센티 남짓의 그 하얀 칸은 장래희망이 없는 나에겐 너무나도 커다랗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어른이었으나 전에 어른이라 적었다가 장난을 친다고 선생님께 호되게 혼났던 저는 무엇도 적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옆자리 친구를 따라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직업을 무성의하게 적어서 낼 수밖엔 없었습니다. 왜 어른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는 항상 좋아 보이기 때문이라 답했습니다. 어린 눈에 비치는 모든 어른은 멋있었습니다. 초콜릿 하나도 어머니께 애걸복걸해야만 얻어먹을 수 있던 내게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모든 어른은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비루한 아파트 속 비루한 벤치에서 술을 마시는 놈팡이 같은 아저씨들도 멋졌습니다. 어른이란 참으로 자유로워 보였으니까요. 학교를 가지 않고, 늦잠도 자고, 밤을 새울 수도 있고, 초콜릿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살 수 있었던 어른을 동경했습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이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초콜릿을 왕창 사 먹지 않지?
중학교를 거치며 발걸음은 점차 느려졌습니다. 밤에 잠을 설쳐 늦게 자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아직은 어른이 되고 싶기만 한데,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자꾸만 누군가 나를 붙잡고, 깨우는 것만 같아 뛰는 것도, 잠드는 일도 쉬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을 해가 지날수록 많아졌습니다. 고등학교 삼 학년, 더 이상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고작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착각이 숨통을 조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에 비치는 모든 어른은 여전히 부러웠으나 내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큰일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는 결정적인 무언가를 지난 뜀박질 중 어딘가에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 내가 바랐던 어른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내가 어른이 되기 위해 한 짓은 고작 뜀박질과 수면이 전부였습니다.
스물. 이상한 나이입니다. 고작 태어난 이래 지구가 태양을 열여덟과 열아홉 번 정도 돌았다고 해서 갑자기 성인이라 불리는 나이가 2012년 1월의 제겐 참으로 기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뛰지도 않고, 밤을 지새우는 날도 참으로 많아졌습니다. 더는 어른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심한 어른이 된 것이 낯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는 어쩌면 높아진 역치 때문일까요. 친구들과 모여 부모님 몰래 간 술집에서 즐거워하며 마시던 것이 술이었을까요 아님 배덕감이었을까요. 마냥 자유만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배신감일까요.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은데 그 명확한 한계를 깨달은 것이 서러워서일까요. 나날이 무거워지는 책임과 초 단위로 휘발하는 가능성이 아쉬워서일까요. 어른의 나이가 된 지금, 제가 눈치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장래희망 칸에 "어린아이"를 적는 것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