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봤다고 해서 다 아는 게 아니다. 오래 알았다 해서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결국 모든 것엔 숨겨진 가시가 하나씩은 돋아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기 마련인 것이다. 시간이 만드는 모든 것들은 서로를 갉아먹으며 변하게 만든다. 바람이 산을 깎고, 바다가 바위를 부수며, 태양이 색을 빼앗듯이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모든 것들을 죽어가게 만든다.
모든 말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한 형언이다. 자신의 싫은 모습을 남에게서 찾아내서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자신은 이런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속이거나. 다시 한번 말하자면, 결국 내뱉는 모든 말은 이데아에 대한 표상에 불과한 것이다.
오래 머문 바위를 들춰내니 벌레가 득실거린다. 바위는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에 대해 괜스레 열을 올리고 나는 그런 바위가 뜨거워 손을 놓치고 만다. 아려오는 손가락을 쥔 채 후후 불며 원망 서린 눈으로 바라봤을 때, 바위는 부스러기들을 토해낸 채 두 동강이 나 있었다. 햇볕만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시간이 숨겼고, 이제 와서 시간이 들춰낸 사실들에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었고 이내 화를 내기도 했으며 걸으며 돌이켜 보니 슬퍼지기까지 했다.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멎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많은 고민을 했다. 딱히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었나 싶다가도 그 말들로 인해 오히려 포기가 편해짐이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만 하다. 배신과 기만 사이에서 이리저리 튕기는 탁구공에 불과했으니 그냥 탁구대 위를 떠나기로 한다. 어차피 눈 감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숨 멎으면 함께 가루 되어 사라질 것들이니까.
불을 지핀다. 점차 타들어간다. 연기되어 사라진다. 타닥거리는 소리는 빈 공간을 가득 메운다. 불빛과 그림자 사이에 서 있는다. 하늘로 치솟아 뭉쳐진다. 구름은 아니었다. 타들어가는 것들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난 여전해. 머저리도 싫지만, 나쁜 사람이긴 더 싫어."
반쪽짜리 달이 환히 빛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