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간 뜸했습니다. 신변에 큰 문제는 없으나, 마음의 골이 깊어져 잠시 쓰는 것을 내려두고 지냈습니다.
"흐름이 안 좋을 땐 가만히 몸을 숨겨요. 삶의 형태만 유지하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심야 식당>에서 나왔던,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입니다. 비록 극 중 사기꾼이 하는 말이지만 꽤나 큰 울림이 되었고, 그 대사를 따라 흐름이 안 좋으면 가끔 숨어 지내곤 합니다.
적당한 거리감이 좋아졌습니다. 예전엔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 속 아우구스투스와 같이 모두에게 사랑받길 원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질 않았고 또 누구도 잃지 않은 채 모든 이를 저의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었습니다. 서투른 인간이기에 표현을 하지는 못했으나 사람이 좋아 그런 바람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하나 이제는 조금. 아니, 적잖게 바뀐 바람입니다. 저 이외의 모든 존재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지난여름, 그간 외면하고 참으며 묻었던 것들에 대한 권태감과 피로감이 저를 사로잡았고 그에 따른 깊고 짙은 싫증은 제 마음을 잠식하였습니다. 솟구치는 짜증과 울분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잠시라도 멀어져 있지 않는다면, 본질을 잊은 채 그저 다른 이를 욕하며 징징댈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나 꼴사납게 굴기는 싫었기에 몇 주 간 뜸했습니다.
같은 것일지라도 받아들이고 말하기에 따라 모든 것은 다른 인상을 주기에, 좋고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또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아주 아이러니하고, 입체적인 면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강단은 쉬이 고집이 되고, 다정함은 쉬이 헤픔이 됩니다. 유연함은 연약함이, 강인함은 무뎌짐이 됩니다. 그것을 모두 판단함에 이제는 겨를이 없음을 압니다.
기대 없이 있는 그대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나 봅니다.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맞은편의 타인을 멋대로 형상화하고, 정립하여 욕심에 가까운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마치 소설 속의, 혹은 영화 속의 인물들과 같은 이상적인 모습을 투영하여 머릿속에 담게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입체적이라는 것쯤이야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그 존재라고도, 부재라고도 말할 수 없을 허상에 불과한 이상적 주변 인물들을 현실에서 마주하여 느껴지는 괴리감은 너무나도 다른 소감을 느끼게끔 합니다. 그렇게 모든 관계는 실망과 피로를 야기합니다.
저라고 뭐 다를까요. 저 또한 아이러니하고, 다각적이어서 누군가에겐 어느 부분은 좋고, 어느 부분을 싫을 겁니다. 그리고 또, 어느 좋은 부분이 다른 누군가에겐 싫은 부분이 될 겁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또 타인에게 말하지 못할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가장 잘 알기에 타인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음은 진작에 뼈 저릴 정도로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실망할 자격이나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빛나던 누군가가 그 빛을 잃는 것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지만, 결국 이 또한 저의 주관에 불과할 테니까요.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그렇기에 저의 글도, 말도 지금까지 그 누구의 마음을 바꾼 적은 없었습니다. 제 말과 글 모두, 타인에겐 그저 어느 정도의 조언 혹은 귀감 즈음에서 그칠 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진리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이 세상의 이치는 저를 제법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항상 뱉을 말을 곱씹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곤 합니다. 침묵보다 나은 말이 맞는지 당최 모르니까요.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꽤나 커다란 저주로 느껴집니다. 상대의 말은 이해가 되질 않고, 나의 말은 닿지 않는 그 상황과 기분은 저주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저주를 상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제부턴가 침묵이 되었기에 입을 닫는 날은 잦아져만 갑니다. 심지어 경각심을 갖지 못할 멍청한 사람이라면 모든 말은 더욱이 무의미해집니다. 그따위 것들에 신경과 감정을 쏟느니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밀려오는 실망감들은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사랑하기에 기대를 하고, 기대하기에 실망을 합니다. 실망은 회의감을 낳으나, 사랑이 사그라지진 않습니다. 그 악순환은 무수히 많은 사랑과, 기대와, 실망과, 회의를 남깁니다. 제게 주어진 또 하나의 저주는, 영원히 타인을 오롯이 이해할 수없이 매 순간 매번 달라질 소감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버거워 잠시 모든 신경을 죽여둔 채 지냈습니다. 알 수 없을 것들을 가늠하려 고민하는 일들은 이제 지칩니다.
혁혁치 못한 마음으로 부정한 한 달을 견뎠고,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여름을 건너 아스라이 다가오는 가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잃기 싫어 놓지 않고 유지하려 붙드는 것 또한 욕심임을 알고, 기대를 내려두기 위해서는 마음을 내려둬야 함을 압니다. 그리고 사실 상대방과의 거리감이나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와는 무관하게 모든 타인에게 실망스러운 것은 필연적으로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좋은 것만을 보려 노력했을 뿐이었죠. 그러나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실망을 직면해야만 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순간에 느끼는 실망감은 커집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제 모든 이와의 적당한 거리감이 좋아졌습니다. 항상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그저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바람은 더욱이 가중됩니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한 발짝씩 세상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행여 사후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부디 그저 관찰자로서의 삶을 영위할 세계이길 바라곤 합니다.
감정적인 글을 쓰고 싶질 않아 꽤나 오래 머금고 또 삼켜내는, 나름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으나 이리 적은 글을 쭉 훑어보면 왠지 감정이 묻어나는 듯한 끈적임에 다시 또 부끄럽기만 합니다. 저는 여전히 어리고 이리도 멍청하여 깨닫지 못한 것들 가득 안고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소년이라 불리기엔 몸뚱이는 너무나 커져버렸고, 어른이라 불리기엔 아직도 어린 정신을 지녔기에 여태 이도 저도 못 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온 인연들을 생각하다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깁니다. 걸어온 만큼 더 걸어간다면, 관계의 모순을 타파할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기엔 저 언덕 능선 너머의 주황빛이 오늘 또한 지나감을 뼈저릴 정도로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