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상상과 꽤 자주 가까이 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고 혼자 포근한 이불에 둘러싸여 잠을 기다리는 시간은 어렸던 나에게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 어두컴컴한 천장 속 나는 서부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좀비 떼에서 살아남았으며 우주를 여행하고 가끔은 마피아가 되어 뉴욕의 거리를 지배했다. 그런 모험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방금 전 장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 이미 졸리움은 나를 반 이상 잠식했고, 내일 밤 이어질 이야기를 꿈꾸며 잠이 들곤 했다. 필자는 ‘몽상가’였다.
월터 미티 역시 대단한 몽상가다. 잡지사 ‘라이프’에서 일하는 그는 라이프의 표지가 되는 수많은 배경들을 여행한다. 가끔은 가스가 폭발하는 빌라에서 짝사랑하는 그녀의 강아지를 구하고, 재수 없는 상사와 히어로물에 가까운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몽상은 하나의 유희이자 도피다. 스스로 별 볼일 없고 쳇바퀴처럼 돌아간다 여기는 삶에 있어서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몽상만큼이나 많은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가수다 되어 무대에 서 보고 싶었고, 정치인들을 보며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잠깐은 마피아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 예전만큼 꿈꾸고 몽상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나에 비해 상상력이 줄기도 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점점 멀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월터가 이해된다. 모히칸을 하고 스케이트보드 대회에서 우승을 해 멋진 어른을 상상하던 소년은 잡지사에서 16년간 같은 일을 하며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몽상은 완벽한 도피처일 것이다.
월터가 숀을 직접 찾기 위해 나서는데 필요했던 것은 단 한 가지. 한순간의 선택이었다. 타인에게 말도 제대로 걸지 못했던 월터는 찰나의,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그린란드로 떠났고 스펙터클한 여행을 한다. 그렇게 월터는 몽상으로만 가능했던 모험을 무사히 해냈고, 더 성숙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여정이 끝난 후 월터는 이야기를 팔아 억만장자가 되지도, 유명 TV프로그램에 출연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라이프의 폐간으로 해고되었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했다. 아마 또 다른 직장에서 반복되는 업무를 맡아 할 것이다. 이 결말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월터들에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사회를 이루며 묵묵하게 자신들의 일을 하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사실 만화에 가깝다. ‘숀 오코넬’이라는 신비주의적 인물을 쫓는 월터의 여정은 뜬금없기도 하며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상어와의 싸움에 화산 폭발에.. 살아남은 것이 용한 불쌍한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기에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꽂힌다. 이 기상천외한 여정을 끝으로 월터는 더욱 단단해지고 당당해졌다. 즉, 변화하길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 반복되는 삶의 안에서도 꿈을 잃지 말자는 것. 혹은 정말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것을 영화를 보는 월터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바쁘게 흘러가는 월터의 여정에 대비되는 따뜻한 연출들이 훈훈함을 주기도 한다. 월급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가족들이 준 선물과 메시지들은 모험에 있어 곤란한 상황에 ‘킥’이 되어주며 항상 내 편인, 뒤를 받쳐주는 가족의 따듯함을 잃지 않았다. 또, 숀 오코넬을 찾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제시하고선 대자연 속 작은 일부가 되어 활보하는 월터를 보여준 연출은 편안함을 넘어 힐링이 되는 감정까지 들게 한다.
사실상 월터의 몽상이 극이 흐르며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게 힐링 그 자체다.. (필자는 여행하고픈 나라로 아이슬란드를 추가했다.) 2~3년 전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꿈을 찾겠다는 생각에 혼자 훌쩍 군산으로 떠났던 것이 생각난다. 물론 중국음식만 잔뜩 먹고 돌아왔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과 나만을 위한 지출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하고 사회를 받치고 있는 것은 존경과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 본인을 위해 작게나마 상상과 같은 시간을 만드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란다.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카메라에 한눈팔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