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한 정의’
정의란 무엇일까요? ‘바르고 옳은 도리’?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다소 추상적인 정의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철학자들 역시 다양한 정의를 내놓았습니다. 정의는 선한 본성이다, 평등이다, 혹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를 지은 자에게 이뤄지는 살인, 아니 사형은 정의인가요? 피해자를 위한 평등일까요? 잠재적인 피해자들을 위한 자유 보장일까요?
그렇다면 과거 그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던 법은 평등하고 정의로운가요? 막대한 돈으로 선임한 변호사들을 통해 유리한 법 해석과 논리구조를 완성하여 본인의 죄를 감량했다면, 우린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너무 Left Wing 같은 생각이라고요? 그렇다면, 교사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학생들이 학생들이란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정의에 가까울까요? 부당한 노사관계로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면, 그것은 합당한 일로 볼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질문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히 많은 사회현상에 혼란스러우시다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린 각자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또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살인자 ㅇ난감’은 이런 불완전한 인간을,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인간과 사회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인 ‘이탕’ 역시 순간의 분노로 우발적인 ‘첫 살인’을 저지른 후 살인을 이어가며 ‘사람을 죽인다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는 자신과 ‘죽어 마땅한 인간을 단죄하는’ 자신, 이 사이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니컬한 겉모습 속 분출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장난감 형사’ 역시 마찬가지죠.
그리고, 이 개인들이 이루는 사회가 있습니다. 또, 빠르게 발전하는 인터넷이 있고요.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은 본인의 의견을 가감 없이 표출하기 편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논의가 더 활발해졌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이젠 생각이 다르면 원색적 비난이 오고 가고, 아예 보고 싶지 않은 정보는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린 모두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각 사회현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누구의 편인지 묻기 때문입니다.
제가 본작의 원작인 웹툰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은 ‘죄’와 ‘단죄’ 사이 정의에 대한 고찰, 그리고 연쇄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 안에 이런 사회와 인간의 ‘이중성’을 잘 다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탕의 살인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면 사회는 또 반으로 갈라져 싸웠을 것입니다. 이탕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사람들과 그저 살인자로 치부하는 사람들로. 여러분은 어떤 쪽에 설지 결정하셨나요? 그 범죄를 자세하게 목격한 우리는 더욱 답을 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원작인 웹툰은 간결한 그림체 속 빠르게 흘러가는 전개 사이사이를 상상하는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이염’,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등 저는 ‘꼬마비’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만, 살인자 ㅇ난감은 특히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역시 생략된 부분이 다소 있긴 합니다만, 적절한 줌 인, 슬로우 모션과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불안정한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등 꽤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일까요? 본작을 다 본 후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사회가 이러니 서로 배척하고 의심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너무도 완전한 것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항상 친절한 이웃이 되고자 노력합니다만, 가끔 너무도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속으로 외마디 욕설을 외치는 인간입니다. 그래도 매년 그러려니, 그런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제가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정의는 ‘올바르고 바른 도리’. 무엇이 올바른지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가 함께 정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우리 사회, 조금 더 이해하고 대화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