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텁텁하고 애잔한 사랑의 맛’
막스 베버는 결혼을 ‘고도의 사회학적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생겨난 제도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인간은 외로움을 피하고 번식을 하며 때로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위해 결혼을 이용한다.
그러나 필자는 부부를 서로의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밖으로 보이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결혼과 동시에 남은 인생을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사랑하며 함께 걷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낭만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린 대부분 알콩달콩한 결혼 생활의 로망을 가슴속에 하나씩 간직하지 않나.
‘파이란’은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텁텁하고, 결혼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애잔한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남녀 주인공인 ‘강재’와 ‘파이란’은 부부이지만 절절한 사랑을 나누진 않았다. 아니,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우리가 아는 좋아하고 설레고 그리워하는 사랑이 아닌, 연민과 고달픔, 그리고 외로움만이 섞여 해피엔딩의 개운함도 새드엔딩의 목마름도 아닌 그저 텁텁한 맛만 내고 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타지에서 위장 결혼 한 남편의 조그마한 증명사진만 바라보며 사랑을 키우고 근근이 살아가는 파이란과 파이란이 죽고 나서야 그녀의 편지와 함께 유일하게 본인을 ‘친절한 사람’이라고 해주었던 그녀를, 이미 끝이 나버린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먹먹하고 씁쓸한 여정이다.
한편, 파이란의 사랑은 사람의 말과 행동, 믿음과 사랑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강재는 불법 포르노를 유통하고 건달 후배들에겐 무시당하며 그야말로 막장 인생인 삼류 양아치였다. 그러나, 편지 속 파이란의 친절한 사람이라는 말에, 보고 싶다는 말에 점차 차분해지고 본인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자면, 긍정의 말과 믿음이 그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영화의 매우 인상적인 메시지이다.
불법 체류자와 뒷골목 양아치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파이란, 우선 주제에 맞는 공간 연출이 돋보인다. 뒷골목, 오래된 노포와 주인공들이 생활하는 공간들이 그들의 열악한 삶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줘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또, 다양한 배우들의 열연 중에서도 최민식 배우의 ‘강재’는, 왜 지금까지도 최민식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인가? 에 대한 정답 격의 작품으로 한 작품 내에서 보여주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고 이를 잘 소화해냈다.
장대하진 않지만 촘촘한 각본과 미장센,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아주 훌륭한 비극을 만들었다. 작중에서도 밥 먹듯 등장하는 소주와 같은 맛이다. 목을 넘길수록 기분 좋은 씁쓸함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