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기쁨도 결국 기쁨이었다는 것을'
영생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심은 늘 있어왔다. 과거 진시황은 통일을 이룬 후 영생에 집착해 ‘불로초’를 찾았고, 서양에선 연금술이 흥하며 마시면 영생을 얻는다는 ‘엘릭서’를 만드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노화하는 몸을 인공장기로 대체하거나 몸을 얼리는 방식 등으로 영생을 꿈꾸고 있다.
게임을 할 때, 높은 난이도 탓에 진행이 막히거나 혹은 압도적인 진행을 원하면 종종 ‘치트키’라는 것을 쓰곤 한다. 게임 머니가 무제한이 되기도 하고,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죽지 않는 몸을 얻기도 한다. 처음엔 무쌍을 찍는 내 캐릭터에 덩달아 나도 신이 나지만, 치트키를 쓴 게임은 곧 흥미를 잃는다. 눈앞에 영원한 삶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 다양한 경험들이 쏟아지겠지만, 결국 인간의 뇌와 몸으로 즐길 수 있는 쾌락의 양과 종류는 정해져 있을 것이다.
반대로 죽는다는 것은 어떤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지 못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그렇기에 한번 주어지는 우리의 이 삶이 영화의 표현을 빌려 ‘끔찍한 기쁨’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찰수록, 외로웠던 나를 채워줬던 상상친구는 떠나가고, 밤 시간을 책임졌던 게임기는 장롱 속에, 죽고 못 살았던 친구들과는 소원해지며,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다. 이젠 나를 채우기보단 당장 살아가는 것이 더 우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이런 어른들이 순수함을 다시 배워가는 동화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과 엮어 각색한 이 작품은 더욱 그렇다. 전쟁의 참혹한 절망 속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적나라한 모습에 피노키오의 엉뚱하고 활기찬 모습이 한줄기 빛이 되어 다른 현실을 꿈꾸게 하고 모험하게 한다. 아들을 잃고 술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제페토’의 다크서클 짙은 눈에 점점 빛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 세계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이 하나 있다면, 제페토와 볼페 백작 그리고 포데스타 시장이 피노키오를 두고 소유하려 삼파전을 이루는 장면이다. 그저 신나고 싶은 어린아이를 두고 제페토의 아버지로서의 외로움과 볼페 백작의 돈에 대한 욕심, 그리고 포데스타의 군국주의적 이념을 한 데서 보자면 이처럼 기괴하고 안타까운 장면이 없을 것이다.
또한, 전쟁과 이념에 대한 어두운 풍자도 눈에 띄었다. 순수한 피노키오에게 남들과 같은 대답을 요구하는 장면과 자신을 욕보인 피노키오에게 즉결 처형과 서커스단 전체를 불태우라는 지시를 내리는 무솔리니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 등 독재자와 전쟁의 무자비함에 애니메이션이 줄 수 있는 재치를 한 술 첨가하여 부드럽고 우습게 만들어냈다.
여러모로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장점을 많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작중 등장한 괴물을 차치해도 피노키오와 다른 인물들의 약간의 그로테스크한 디자인과 술, 담배나 폭력 등을 적절하게 노출하여 잔혹 동화의 특징을 잘 살렸으며, 계속되는 고난과 역경을 사랑으로 이겨내는 줄거리를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하여 필자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만들었다. (사실 영화를 보며 잘 우는 편이다.) 거기에 뮤지컬을 한 방울 떨어뜨려 다채로움을 더했다.
험난했던 모험 속 가족이 된 등장인물들 중 인간과 동물인 이들은 시간이 흘러 죽어야 했다. 나무 인형인 피노키오는 가족들과의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였고, 본인도 더 넓은 세계로의 모험을 떠났다. 작중 화자인 세바스티안은 피노키오도 아마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했다. 평생 한 번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 먹으면 다신 먹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음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달콤하겠는가. 인생 역시 그렇다고 영화는 말한다. 유한하기에 더 의미 있다고, 더 재밌다고, 더 짜릿하다고.. 여러분의 한 번뿐인 인생도 알차고 즐거운 시간만 가득하길 오늘도 기대해 본다.
내 아들, 네 모습 그대로 살아. 널 사랑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