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엔 나이가 없다.'
오래된 가정집 2층 조그마한 원룸, 군대를 전역하고 남은 대학 공부를 마치기 위해 자취를 처음 시작했던 때가 생각난다. 원래 가졌던 꿈은 사라졌었고,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오면 그저 공허한 마음에 혼자 술을 한두 잔 마시곤 했었다. 그리고 다음날 쨍한 햇살에 눈을 뜨면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건 아닌지 괴로웠다. 그 당시 난 외로웠고 막막했던 것 같다.
시각을 잃는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냄새를 맡지 못하고 맛을 보지 못하는 것도 물론 괴롭겠지만, 당장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절망적일 것이다. ‘여인의 향기’ 속 ‘프랭크’는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마주하고 말았다.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쏟아부은 군에서 수류탄으로 시력을 잃고 전역을 했고, 나이도 들어가지만 여전히 앞을 볼 수 없는 그 절망감, 누가 쉬이 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찰리’는 어쩌면 우리가 학창 시절 한 번쯤 겪어봤을만한 위기에 놓여있었다. 목격자의 입장에서 친구의 잘못을 밀고할 것인지, 본인의 양심에 따라 밀고자가 되길 거부할 것인지. 다음 주에 있을 상벌위원회 전 두 남자는 우연히 그야말로 ‘좌충우돌’ 뉴욕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여정이 가슴 따뜻한 드라마가 될 수 있던데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있었다. 먼저 ‘브로맨스’다. 이 두 남자는 성격부터 가치관까지 맞는 구석이 하나 없다. 냉소적인 프랭크에 반해 찰리는 순수하고 양심적이며 무엇보다 본인의 앞으로의 삶을 진정성 있게 고심하는 학생이다. 이들은 여행 내내 크고 작게 부딪히고 때론 서로를 보완하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위기의 서로를 보듬기 위해 마치 동화된 듯 찰리는 소리치고 프랭크는 진정 앞으로의 삶을 고심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는 천천히 쌓아 올린 두 남자의 우정과 갈수록 침체되는 프랭크의 감정선을 단번에 폭발시키는 임팩트 있는 연출로 큰 감동을 준다.
또 하나는 ‘나이에 따른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뒤집었다는 것이다. 즉, 본 작품은 얼핏 퇴역군인이자 ‘어른’인 프랭크가 계획하고 주도하며 고민에 빠진 성장기의 학생을 데리고 뉴욕을 여행하며 현실적인 조언과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의미를 잃고 외로워 마지막 여행을 준비한 퇴역 군인을 살린 청년의 이야기다. 절망적 삶 속 방어적인 태도의 프랭크는 많은 지인들에게 외면받고 배척당하지만 우연히 함께 여행하게 된 찰리는 계속해서 프랭크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프랭크는 이성(여성)에 대해 약간은 음담패설처럼 들릴 정도로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고 이성의 몸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극 후반, 사실 프랭크의 꿈은 여성이 자신을 안아주는 것,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고서도 자신을 떠나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하는 대사를 통해 프랭크는 그저 이성의 몸을 탐하고 싶었던 게 아닌, 진정 자신을 보듬어주고 위로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임을 밝힌다. 결국 그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듣던 청년이 프랭크를 위로하고 안아준 것이다.
마지막 상벌위원회 시퀀스까지도 ‘여인의 향기’는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의 의미를 안겨주며 많은 의미와 감동을 전달한다. 실은 러닝타임이 길기도 길거니와 감정을 그대로 전하기 위한 짧지 않은 테이크 때문에 극 자체는 조금 루즈할 수 있다. 하지만 따뜻한 메시지와 프랭크로 분한 알 파치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알 파치노는 우리에게 익숙하듯 대부 혹은 칼리토, 스카페이스 등 갱스터 연기의 강렬한 인상, 혹은 군인, 변호사 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본 작품을 통해 선보인 여린 심성을 지닌 한 명의 노인 연기는 신선하기도 했으며 너무도 잘 소화해 맛나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좁은 자취방에서의 치열한 외로움은 나에게 나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셔 살은 많이 올랐지만.. 그 시간 동안 많은 고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영화를 보았고 많은 음악을 들었다. 아직까지 앞으로의 방향, 삶의 의미를 정확히 찾지 못했지만, 끝없는 고독과 고민의 괴로움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생각보다 허탈함은 자주 찾아온다. 작은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시원섭섭의 감정이 지나면 허탈함이 온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허탈함을 극복하는 힘 있는 외로움을 키워야 한다. 오늘도 삶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어떤 취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여러분의 외로움을 응원한다.
(살아야 할 이유를) 두 개 댈게요. 중령님은 제가 아는 누구보다 탱고를 잘 추시고, 페라리를 잘 몰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