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정해지는 순간'
영화는 가리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나, 굳이 손이 잘 가지 않는 장르를 꼽으라면 필자는 공포 영화와 전쟁 영화를 꼽는다. 공포 영화는 많이 공감하시리라 생각되는데, 친구들과 FPS 게임을 해도 코너를 돌아 마주한 적에게 깜짝 놀라 총을 쏴보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나에게 공포 영화의 점프 스케어는 고문과 다를 바 없다.
한편 전쟁 영화의 경우는 다소 뻔한 전개가 되기 쉽다. 물론 실제 역사 속 전투를 그리는 경우도 많겠거니와, 현실적으로도 전쟁 속 다양한 전략이나 규모를 사실과 가깝게 그리기는 것이 매우 어렵기도 하여, 주로 크고 작은 규모의 지휘관이 부대 내 갈등을 겪고 능력을 의심받다가 극복하고 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전개가 그려진다. (물론 필자가 모든 전쟁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1917’과 ‘덩케르크’는 나에게 전쟁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다.
1917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한 명의 병사의 시점으로 오로지 끝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지루한 전쟁의 참혹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참호 속 지치고 병들어 있는 병사들의 모습부터 시체가 아무렇지 않게 나뒹굴고 있는 최전방 참호, 중간 지대를 거쳐 전투의 한 가운데까지. 갈등을 해결하고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닌, 목적을 가진 병사가 전장을 가로지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목격을 마치 롱테이크로 이뤄진 듯한 촬영 기법인 ‘원 컨티뉴어스 숏’을 이용해 생동감을 더했고, 슈퍼스타 대신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하여 더욱 현실적인 몰입을 도왔다. 다만, 유명 배우들이 짧게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장교로 등장하면서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다양성을 더했다.
영화는 ‘목적’에 대한 물음도 넌지시 던지는 듯하다. 전쟁의 목적은 무엇인가? 승리를 하는 것일까, 국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일까. 그 목적이 무엇이던, 그것은 국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목적이 된다. 그렇다면 국가에 소속이 되었단 이유로 그 전쟁에 참전한 병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애국심?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혹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인 스코필드의 여정을 마주하며, 우리는 목적이라는 것의 조금 더 솔직한 부분을 볼 수 있다. 초반 스코필드의 전쟁에 대한 다소 염세주의적인 생각은 자신을 이 여정에 끌어들인 블레이크의 죽음 이후, 최전방에 도착하여 공격을 멈추라는 전령을 보내야 하는 목적에 무섭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포가 떨어지는 전장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서라도 공격을 멈추려는 스코필드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대의였을까. 아니면 블레이크의 형을 살려야 한다는 우정의 결과였을까. 아마도 그 두 가지가 적절한 비율로 섞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친구를 지키진 못했던 스코필드는 전쟁의 끝을 보고 싶었던 상관에게는 꺼지라는 말을 블레이크 중위에겐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한번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매 순간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물인가? 혹은 비슷한 또래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사람은 모두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환경이 그 사람의 순간의 목적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는 꿈을 꿀 수 있겠지만, 순간의 내 목적, 내 할 일은 온전히 내 의지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영화의 수미상관 구조의 흥미로운 점이 되는 것이다. 나무에 기대 잠을 자던 스코필드는 어떤 이유로 일어나 목적을 가지고 완수한 후 다시 나무에 기대 잠이 들며 끝이 난다. 결국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완수할 수 없는 어떤 꿈을 가지고 계속해서 과업을 완수해 나가는 작업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쩌면 누구에게 비난을 들을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많은 과업을 이루는 동안 또 많은 일을 겪고 다양한 사람과 감정을 마주하겠지만, 우린 담담하게 또 강인하게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은 아닐까. 오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과업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