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토요일은 어땠는가'
혼자서 술을 한잔 기울일 때면, 이 영화를 찾고는 한다. 필자가 선호하는 술안주는 끝까지 부담을 주지 않는 안주다. 너무 배가 부르면 술맛이 떨어지고, 너무 자극적이면 술맛이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한 잔, 두 잔 기울이다가 영화를 보며 잠이 든 적도 많다. 얼핏 보면 인트로가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도 계속해서 술안주로 찾는다.
‘멋진 하루’의 맛은 담백하고 슴슴한 것이다.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지는 것이 아니라, 양초처럼 천천히 녹아내린다. 이 작품은 2000년대 중반의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비춘다. 네온사인이 가득한 서울의 야경이 아닌, 아침부터 시작되는 서울의 도로, 건물 등.. 배우들의 연기는 감정을 응축했다 터뜨리는 것이 아닌 그저 살아가는 우리를 연기하는듯 하다.
토요일의 시작은 350만 원을 빌리고 잠수를 타버린 전 남자친구 ‘병운’ (가지가지 하긴 했다.)를 찾아온 ‘희수’로 시작한다. 당장 갚지 못하는 병운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희수에게 돈을 갚기 위해 두 사람의 여정은 시작된다. 전형적인 로드 무비로 곳곳의 ‘서울스러운’ 아름다움을 주는 장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도 비춘다. 다양한 직업과 각자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 여행도 겸한다.
담백한 영화 자체와는 다르게 연출과 각본은 아주 훌륭하다. 두 사람 사이 1년이란 공백을 영화 전체에 걸쳐서 천천히 풀어낸다. 각자 어떤 불행이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줄거리에 집중하다 보면 서로 툭하고 질문을 던지며 공백을 어떻게 보냈는지 관객에게 슬쩍 보여준다. 또, 복작복작한 병운의 사회 속 다양한 갈등을 그려내지만 인물의 표정이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주변의 풍경, 서울의 모습을 더 부각시키며 어쩌면 인간 사이의 일은 정말 사소한 것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말이다.
병운이라는 배역이 본인과 가장 닮아있다는 하정우 배우의 말을 본인이 증명하듯, 아주 맛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 능글맞은 연기를 보고 있자면, ‘내가 여성이었다면 병운 같은 남자친구는 어떨까..?’ 하고 상상하며 실소를 뱉게 한다. 희수 역의 전도연 배우의 까칠한 연기 역시 좋았지만, 온갖 수모에 능청맞게 넘어가는 병운의 씁쓸한 미소에, 어쩌면 더 힘든 시기를 보냈겠구나 하고 예측하게 하는 연기를 아주 훌륭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출과 연기가 잘 맞닿아 좋은 조합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감정선이다. 아주 묘하다. 여느 재회를 주제로 하는 작품처럼 뜨거운 사랑을 다시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간당간당하게 감정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 전 연인들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돈을 빌리고 갚고, 무시를 당하고 비를 맞는 등 터프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이별 후 1년간 가장 해방과 같은 하루가 아니었을까 하고 바라보게 된다.
본인이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더 열거하자면 이 글을 맺지 못할 것이다. 마치 평양냉면과 같다. 희수 몰래 와이퍼를 고치고 사라지는 병운처럼, 계속해서 옛 생각에 젖어가는 희수처럼. 그리고 아주 약간의 미련을 가지고 헤어지는 두 사람처럼.. 그 묘한 맛을 잊지 못해 계속해서 손이 가는 영화다. 우린 복잡한 관계 속에 살아가고, 많은 감정들을 놓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인생이며 1년이 지나고 혹은 5년이 지나고 희수와 병운처럼 다시 우리를 돌아볼 시간이 오지 않을까?
P.s. 멋진 하루의 ost와 관련한 이야기는 꼭! 추신에 넣고 싶었다. 영화를 감상한 후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서울의 도심을 걸어보자. 잠시 동안 이 서울의 주인공은 당신이다. 멋진 토요일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