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바라는 자, 변명 아닌 반성을’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치과에 가야 할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져야 할 때? 사람마다 다양한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치과에 가는 것이 힘든 이유는 여태 방치한 내 충치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질 땐 무관심하고 관계를 소홀히 했던 내 지난날을 마주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는 이유는 보통 내 잘못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갈 순 없습니다. 우린 하루 24시간, 그것을 365일 다시 그것을 7~80번을 반복하며 아주 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축복된 지루한 여정을 무결점으로 살아갈 수는 없겠죠. 참 영민하면서 이기적이기도 한 인간은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 덜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신도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신에게 진실되게 고백하면 신의 대리인에게 용서를 받고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게 하였고, 한편 사회는 죄에 대한 벌이라는 것을 만들어 사회와 격리하고 반성할 시간을 부여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반성일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도 인간은 내 죄를 마주하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반성에도 여러 변명을 덧붙입니다. ‘치과에 갈 시간이 없었어요.’, ‘남을 사랑해 주기엔 나도 여유가 없었어요.’ 등..
‘라이트하우스’는 주인공의 잘못을 뉘우치고 구원을 받고자 죄책감을 마주하는 격정적인 여정을 그리는 듯합니다. 등대가 있는 섬은 주인공의 죄의식 그 자체입니다. 그곳은 해야 할 허드렛일과 궂은일들이 있고, 선배 등대지기가 있으며 밝게 빛나는 등대가 있죠.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은 죄책감을 마주하고 처절하게 반성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선배 등대지기인 ‘웨이크’는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이것저것 시켜대며 더욱 부지런해질 것을 강조합니다. 즉 웨이크는 주인공의 양심이 될 수 있겠죠. 죄를 뉘우칠 때까지 계속해서 채찍질하며 마음을 혼잡스럽게 하는. 등대의 빛은 구원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그 빛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궂은일을 해나갑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주인공은 아주 열심입니다. 언젠간 빛을 관리하리라는 꿈을 가지고 수조를 청소하고, 등유를 나르는 등 웨이크가 위에서 빛과 함께 노니는 동안 부지런히 일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점점 자신에게 가혹한 웨이크를 향해 미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주인공은 망가집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양심과 타협하려는 듯 함께 술을 마시고 이해받아보려 자신의 지난 잘못 들을 웨이크 앞에 털어놓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과 함께였고, 웨이크는 그 이야기엔 관심 없다며 무시합니다. 결국 빛에 대한 꿈이 욕심으로 번져버린 주인공은 마지막 양심까지 땅에 묻어버리고 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처절한 반성이 없는 구원에 그만 눈이 멀어 높은 등대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라이트하우스는 고전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드러낸 영화입니다. 1.19:1 비율의 화면을 필름으로 찍어낸 흑백영화이죠. 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과한 그림자 크기와 오밀조밀 배치한 소품. 고전의 느낌을 야무지게 뽑아냈습니다. 그런 만큼 상황을 정확하게 고증하고, 갈등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닌, 인물들의 감정의 변화를 격정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적인 상황과 소품을 활용하는 연출이 도드라집니다. 이것은 주인공의 상황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은유적으로 연결하여 각자 해석하는 맛도 있게 작품을 만들었죠. 두 배우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로버트 패틴슨을 처음 접한 건 어릴 적 트와일라잇 사가를 보았을 때입니다. 머리가 크며 그 배우가 자주 보이지 않자 그냥 그런 하이틴 영화 주인공으로 남겠거니 했지만, 최근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뽐내고 있습니다. 특히 이 라이트하우스에선 시간이 지나며 광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주인공 역을 너무도 잘 소화했습니다.
특히나 자신의 잘못을 변명으로 뒤덮고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죄책감이라는 섬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또 신들에게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으로 하여금 피해 입는 사람들을 은유하는 갈매기들에게 장기를 뜯어 먹히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인 연출이라고 평할 만했습니다. 나는 내 잘못을 잘 인지하고 있을까. 내가 잘못한 것을 난 정말 반성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비록 줄거리가 난해한 면은 있지만, 한 편의 문학 같은 작품으로 매우 흥미롭고 잘 만든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