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이 정해져있다면, 인간에겐 무엇이 남는가.’
우주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의 과학자와 철학자들, 혹은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탐구해온 주제다. 누군가는 우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저 우리의 인생을 살면 되는 것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는 우주의 질서 안에 살고 있으며 그 질서 안에서 덕을 쌓는 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한다. 무엇이 맞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치 음모론처럼 우주가 존재하지 않는게 아닌 이상, 우린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넓디넓은 우주에 한 점, 아니 어쩌면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론은 말한다. 인간은 자연이, 우주가 정해놓은 운명을 그저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회의적이기에 철학자들은 정해진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고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작은 내가 살아가는 이 작은 세계 역시 우리의 역사와 사랑 등 모든 것을 통해 만들어졌으니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우릴 위로하기도 한다.
우주인은 너무도 작고 쉽게 외로움을 느끼는 우리 인간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무수히 많은 답 중 하나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국가적 사명을 가지고 우주 물질 채집을 위해 우주로 떠난 ‘야쿠프’는 임무로 인해 떨어지게 된 그의 아내 ‘렌카’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렌카는 지구에 홀로 떨어진 외로움으로 야쿠프와 헤어지길 원한다. 야쿠프 역시 이를 어렴풋이 알면서도 어쩔 줄 모른 채 그저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 홀로 놓여 있을 뿐이다. 그렇게 각자의 외로움에 짓눌려 있을 뿐이었다.
우연히 야쿠프는 우주적 존재와 마주치게 된다. 이 우주적 존재는 야쿠프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기억 속 존재하지만, 당장은 다른 기억에 묻혀 있는 기억을 떠오르게끔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외로움에 관심이 생긴 이 존재는 야쿠프의 외로움을 이해하려 하고, 그러기에 야쿠프의 기억 속 렌카와의 기억을 계속 소환하게 한다. 근래의 기억은 분명 무관심과 미움이 점철되어 있지만, 기억을 계속 파낼수록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점점 항해의 목적이었던 우주 물질에 다가간다. 존재는 이것을 ‘시작’이라 불렀다. 야쿠프와 그것은 그 시작이란 물질을 헤엄치기 시작하는데, 그곳엔 야쿠프의 모든 것이 있었다. 기억과 감정, 모든 것. 야쿠프는 이것을 위해 우주로 뛰어들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러나 막상 그 물질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고, 오히려 그는 그곳에 렌카가 없다는 것을 떠올린다. 국가와 아버지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시작한 이 여정의 끝에 다다르고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고 느껴야 할 지금 아이러니하게 가장 절실하게 떠올린 것은 익숙함에 취해 안일하게 대했던 가장 사랑하는 렌카인 것이다.
그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우린 알 수 없다. 그들은 사랑했지만, 더 이상 아물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과정 역시 사랑의 한 과정일 것이다. ‘우주인’은 인간이 대단한 사명을 가지고 지구란 무대에서 대업을 이루고, 돈을 천문학적으로 벌어 대단한 부자가 되고 하는 것 따위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결국 그 후에 내 옆에 몹시 사랑했던 사람, 가족이 되었던 연인이 되었던 그 사람이 남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겠냐는 것이다.
작품은 러닝타임이 그리 길지도 않거니와 사실 플롯에 허점이 많이 있다. 무려 한국과 경쟁하고 있는 이 국가적 우주 프로젝트에 야쿠프를 혼자 보낸다거나, 야쿠프와 렌카의 사이가 단순히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흔한 연인들과 같은 스토리를 가진다거나 하는 허술함이다. 물론 이것은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방법이지만, 간혹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프라로 불리는 우주 물질을 표현하거나 우주와 지구의 자연을 아름답게 담아냈고, 허술함을 감수한 만큼 진한 여운을 남기는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결말엔 경쟁국이었던 한국의 우주선이 야쿠프를 구하기도 하며 인류애까지 담아버렸다.
물론 사랑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우주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혹은 분열되고 있는 인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인간으로서의 한 걸음이 될 수도 될 수도 있지만, 그 후 진정한 사랑이 없는 헛헛한 인생을 떠올리자면 서늘한 기분이 든다. 우주인은 인간의 사랑을 충만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글을 읽는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하는 저녁이 되긴 바란다.
당신이 원한게 여기 전부 있을 줄 알았는데, 없는게 뭐죠?
그녀가 여기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