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한 시대가 저물 때‘

by 강치우


매일 많은 것이 변화하는 소용돌이 속에 우린 서있다. 특히 인터넷 속에서 너무 많은 정보와 의견이 빠르게 교류되고 있는 요즘, 소위 ‘좋은 것’과 ‘올바른 것’의 기준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요즘, 태풍의 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품고 때로는 내비치고 가끔은 숨기며 우린 살아간다.


다행인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솔직함을 허락한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취향의 폭은 넓어졌고, 그것을 좋아하는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뿐더러, 점차 내가 좋아하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오고 있다.


분명 필자가 어릴 적에도 여자다운 것, 남자다운 것이 존재했다. 그것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그럴수록 ‘남이 보기에’ 다른, 이상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는 빠르게 변화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파워 오브 도그’ 는 우리가 여태 봐왔던 서부극을 비트는 작품이다. 훈훈한 외모에 전설적이지만 외로운 총잡이도, 그들이 펼치는 숨 막히는 1 대 1 결투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주인공 ‘필’은 여러 카우보이를 강한 카리스마로 이끄는 목장주이다. 잘 씻지 않고, 매번 퉁명스레 남들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필은 누가 봐도 ‘남자답다.’ 그의 동생 ‘조지’는 형과 달리 통통한 몸매에 성격도 소심하다.


미망인인 ‘로즈’는 식당을 운영하며 자신의 아들 ‘피터’를 몹시 사랑하는 엄마다. 그리고 피터는 남들과는 다르게 종이로 꽃을 만들고, 빗으로 머리를 빗으며 앨범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무언가 ‘이상한’ 소년이다. 우연히 로즈와 조지는 사랑에 빠지고, 이를 피터의 대학 진학을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여긴 필은 로즈를 아주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방학을 맞은 피터는 필과 가까워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필의 비밀을 알게 된다. 엄마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필을 마음속으로 증오하던 피터는 더욱 필과 가까워져 결국 그를 죽인다.


작품이 끝을 맺을 때 ‘파워 오브 도그 (power of dog)’ 가 성경의 한 구절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작품 전반에 대한 의미를 나타냈다. 고대 유대에선 개를 사악하고 부정적인 것의 상징으로 여겼다. 즉, 성경 안에서 필은 ‘개의 권세’로 그것을 어떤 힘으로 누르는 피터를 구원자로 상징한 것이다. 상대를 죽이는 ‘위험한 힘’을 사용했지만, 피터가 그 구절을 읊으며 어머니와 자신을 구원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필자의 눈에 띄었던 장면은 필이 소몰이 개를 부를 때 사용했던 휘파람을 피터와 가까워진 후 피터를 부르는데 사용했다는 것이다. 피터와 로즈를 분리해 로즈를 불안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던 필은, 개를 부르듯 휘파람을 불어 피터를 불러낸다. 때문에 목장 안에서 필이 권력자이며 ‘탑독’이고 피터가 ‘언더독’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이러한 관계의 설정으로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필은 자신이 품고 있는 비밀을 드러내지 못한 채, 시대의 요구에 의해 남자다움, 강함을 강조하는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상술한 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 더욱 견고하게 요구되었던 시대이다. 반면, 피터는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고 표현하며 솔직함을 무기로 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될 수 있겠다.


그 사이에서 새로운 시대를 보살피며, 옛 시대의 꾸준한 눈총을 받는 것은 과도기 시대에 위치한 로즈다. 로즈는 계속해서 자신과 맞지 않는 자리에서 힘들어하지만, 피터와 조지를 위해 자기자신을 망치면서도 자리를 지킨다. 그야말로 엄마와 같은 과도기 로즈의 세대 덕에 피터의 시대를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따라서, 파워 오브 도그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약한 내면을 가졌으나 강한 겉모습으로 상대를 압도하려 드는 악한 힘에 대해, 내면의 강함을 가진 중성적인 겉모습의 유연한 인물이 자신과 주변을 구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는 옛 시대와 떠오르는 새 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극 중 필이란 인물이 대단히 증오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로즈를 향한 그의 괴롭힘을 절대 옹호하거나 정당화할 순 없겠지만, 그는 구시대적 인물로 가족을 지키고 원치 않는 강함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했던 인물이기에, 그 역시 딱한 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미장센은 훌륭했다. 이젠 남아있지 않은 미국의 서부시대를 재연하기 위해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서부의 광활함과 자연을 압도적으로 그려냈고, 꼬질한 감성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또한, 극 중 종종 그려지는 맬랑콜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캐스팅 역시 눈에 띄었다. 카리스마에 비해 호리호리한 몸을 가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캐릭터가 가진 비밀을 잘 담았으며, 피터 역의 코디 스밋 맥피 역시 오묘한 분위기를 잘 담았다.



다음 시대가 더 많은 솔직함을 허용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진보한다는 측면에서 더 솔직한 사회를 끌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강요가 되어선 절대 안 될 일이나,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끌어내어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조율하는 것은 분명 그들을 배척하고 숨게 하는 것보단 백번 더 옳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을 조율하는 순간 사회는 더 성숙해지고 또 더 나은 시대의 꽃이 피게 될 것이다. 그 시대는 누군가를 통제하는 휘파람이 아닌,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는 대화가 오가는 더 멋진 시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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