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사과를 잊고 떠난 이에게 전하는 마지막 한마디’

by 강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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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을 기록하는 많은 작품들이 있다.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한 번쯤은 ‘내가 일제강점기에 나고 자랐다면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을 나눈 적이 있을 것이다. 일제가 저지르는 악행들을 묵인하고 때로는 동조하는 나라의 관리라는 자들은 마땅히 심판하고 나라를 판 죄를 치르게 해야 하지만, 그 당시를 사는 시민들은 그저 눈 앞에 총칼이 무서웠을 테고, 때로는 나라가 어떤 위험에 처해져 있는지 무지했을 수도 있다.


내가 육군사관학교에서 공부를 막 마치고 장교로 임관한 군인이라면 어땠을까? 소위 ‘실세’인 전두환 소장이 내게 ‘하나회’에 함께하길 제안한다면, 난 과연 뿌리칠 수 있을까? 아마 그 권력이 무서워 거절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명분만이 존재하는, 원칙이 없는 군사 쿠데타에 가담했을 것이다.


그대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면, 마땅히 지난날의 죄에 대해 최소한 사과를 해야, 반성을 해야 인간인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위시한 몇몇은 최소한 목숨을 다하기 전에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리더이자 후에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서울의 봄’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솔직히 보기 전엔 조금 겁이 났다. ‘민주화 운동’의 시대는 이제 많이 지났고, 많은 매체에서 다루며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필자 본인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를 그 자체로 신성하게 여기지 않고 정쟁으로 계속 소비하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실제로 피땀 흘린 우리 선배들에게 실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에 비해 담백했다.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실제 쿠데타 과정과 유사하게 진영 간의 협상과 협박, 회유 등에 집중했다. 반면 총격전과 신파는 줄이면서 사건 자체로도 분노하는 관객들의 피로를 줄였다.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화면 분할과 그래픽 등으로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오게끔 하여 이해를 쉽게 했다. 사전 지식을 가지고 보면 더욱 재밌지만, 잘 알지 못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끔 하였다.


전두광을 악으로 설정하고 극이 흘러가지만, 상황에 따라 보여주는 기지와 부하들에게 자신을 믿게 하는 카리스마 등을 보여주며 리더십을 가진 악당으로 그려냈다. 반면 이태신 장군은 옳은 길을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게 걸어가는 또 다른 리더십을 보여줬다. 황정민, 정우성 배우의 호연이 어우러져 각 진영을 이끄는 리더들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다. 현실과 비교해 종반부를 비롯한 극적인 연출이 있었지만, ‘서울의 봄’ 역시 픽션을 표방하는 영화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다만, 국방장관과 같이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을 제외한 다른 무능한 장성들의 수를 좀 줄였다면 관람의 피로는 덜고 박진감은 더했을 것이다.


극 중 이태신 장군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지나며 어떤 결의를 다졌을까. 12척의 배로 반란군을 대적해야 하는 그 두려움으로, 자신이 배수의 진이라는 절박함으로, 그리곤 단신으로 바리케이드를 넘는 처절함으로 사과를 잊고 떠나간 그 사람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다.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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