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라는 명분이 준 상처’
1960년대, 미국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자유진영 수호를 위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다. 그와 동시에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한국전쟁 이후 달라진 한국군의 위상을 과시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군을 파견한다. 예상치 못한 미군의 졸전 끝에 북베트남이 전쟁에서 승리, 베트남을 통합한다.
군에 입대하여 처음 소총을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예상했던 것보다 큰 총성이 귀를 먹먹하게 했고, 총의 반동은 어깨를 때려 붉은 멍을 만들었다. 전쟁에 대하 내가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가운데 서있다고 상상해 보라. 쉴 새 없이 귀를 때리는 총성과 폭발음, 쓰러지는 아군들. 그 자체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줄 것이다.
‘디어 헌터’는 전쟁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기존의 전쟁 영화를 생각하고 갔다면 눈을 깜빡하자 영화가 끝나는 경험을 하기 십상이다. 영화의 3분의 1은 세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스티븐의 결혼식으로, 나머지는 베트남 전쟁 참전 후 PTSD를 겪는 당사자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마치 드 니로가 무쌍을 찍는 전쟁 명화로 보이나 열어보면 뛰어난 심리 묘사에 전쟁이 한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현실적으로 담은 작품이기에 영화는 잔잔하게 흐른다.
시작과 함께 한 시간 가량 스티븐의 결혼식과 클레어턴이라는 작은 마을의 일상을 보여준다. 7-80년대 러닝타임이 긴 몇몇 작품이 그렇듯, 초반에 많은 시간 등장인물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인물의 행동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의 후반부와 대비되게 하여 작품 결말에 더 큰 임팩트를 주는 것이다. ‘디어 헌터’의 경우 후자로, 철이 없어 보일 만큼 밝았던 청년들이 전쟁 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심리 묘사는 특히 뛰어나다. 마이클이 가진 죄책감과 리볼버에 대한 트라우마, 심각한 부상으로 마을에 돌아갈 용기를 잃은 스티븐과 러시안룰렛의 트라우마로 정신 이상을 보이는 닉까지, 관객이 억지스럽지 않게 이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닉의 은은한게 돌아있는 눈빛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해당 작품은 몇몇 장면과 고증이 인종차별 논란에 부딪히기도 하였지만, 큰 거부감은 없었다. 특히 전쟁 후 사슴 사냥에 나선 마이클이 사슴을 그냥 보내며 ‘괜찮아’ 하고 소리치는 씬은 사슴을 베트남인에 비유했다기 보다는 총알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의 위로하려는 행동으로 그려지며 그 뒤로 펼쳐진 멋진 풍경과 함께 영화를 잘 매듭짓는 장면이 되었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1950년 6.25전쟁을, 1960년대 월남전을 겪은 국민들과 함께 아파했던 가족들이 있다. 냉전으로 인해 이념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에서 죽고, 다치고 울어야 했던 사람들은 전쟁을 계획하고 시작한 자들이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우리의 가족들이다. PTSD는 이제 주변에서 흔하게 소비되는 단어가 되었지만,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돌아보고 국가 이전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 서야 했던 우리의 영웅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념은 물론 중요한 것이다. 한 사회의 방향을 결정짓고, 개인의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 또, 여전히 우리는 휴전 국가로 전쟁의 위협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젠 더 이상 이념이 정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방향의 옳고 그름을 토의해야 하는 것이지 이념을 명분으로 서로를 공격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혐오의 한 가지 수단으로 이념이 활용되기보단 좀 더 건전하게 이념을 나누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