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cm의 우연이 꿈속의 그대가 되기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사랑이 시작되는 것만큼 신비로운 일이 있을까? 우연히 마주쳤던, 오래된 인연을 다시 만났던, 혹은 친구 사이였던. 어떤 우연한 순간에 매료되어, 따갑게 비추던 햇살은 아름답고 날 괴롭히던 하루하루가 행복한 상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흐른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될 때 날 간지럽히는 설렘의 황홀함은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라는 세계는 크게 요동친다. 그 세계에선 처음으로 나보단 네가 소중해지고, 너의 취향에 천천히 물들어간다. ‘중경삼림’은 그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아비는 663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우연히 얻게 된 그의 집 열쇠로 663이 근무를 하는 동안 몰래 침입하여 전 연인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취향들로 그 집을 채운다. 헤어진 연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663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곤 그녀에게, 그녀의 세계에 착륙하기 위해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경찰 제복의 663과 식당 직원으로 만났던 아비가 비행 승무원 제복의 아비, 식당 오픈을 준비 중인 663으로 다시 만날 땐 1년이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서로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펑키한 불빛과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화면, 흘러나오는 올드팝 등 ‘중경삼림’의 미쟝센은 대단히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사물과 인물, 배경의 배치도 독특하다. 특히 블랙커피를 마시는 663과 팔을 괴고 그 언저리를 쳐다보는 아비를 비추는 플립 북과 같은 연출은 감탄을 자아낸다. 여타 로맨스 영화와 같이 열렬히 사랑하는 장면에 초점을 두기보단, 이별을 통보받고 미련에 허우적대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끝맺음을 하는 플롯이 이 영화의 독창성을 더해준다.
상술한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 중경삼림은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다. 집에 잠입한 아비의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663을 보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1부 이야기의 경찰 223의 소년 만화와 같은 움직임, 첩보 영화의 주인공 같은 금발의 여인 등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동떨어진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영화를 영화대로 곱씹자면,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 강렬한 네온, 뿌연 화면, 몽환적인 한 밤의 꿈과 같다고 느낄 것이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화려한 연출에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질리지 않은 씬과 음악. 다소 키치하면서도 상업 영화로도, 아트 시어터로도 아깝지 않은, 마치 오후에 꾸는 꿈처럼 몽환적이기까지 한. 화려한 영화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