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오기까지'
여러분은 솔직한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작은 거짓말부터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지 마음을 터놓고 싶은 친구에게 정말 마음을 열고 있는지.. 등의 질문에 많은 이들은 고민할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 작중 윌과 마찬가지로 우린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윌의 삶은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데에 방어기제 그 자체였다. 학대와 버려짐을 반복하는 동안 상처를 감추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남을 상처 주는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빼어난 두뇌로 상대를 상처 주고 무시하며 먼저 버려지기 전에 떠나도록 종용하였다. 천재적인 두뇌는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은 알게 된다. 모두가 월을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들이 있었고, 우연히 알게 된 ‘숀’ 교수가 있었다. 그저 윌은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어찌 되었던, 결국 윌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은 축하할 일이다. 자신을 가두어놨던 감옥을 깨고 본인을 받아들였다. 명대사들이 참 많다. 상처를 가진 윌을 위로하고 나무라는. 문득,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물론 그렇기에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을 지나치게 걱정하며 나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이트 클럽’과는 또 다르게 부드럽고 따듯하게 물어보고 있다.
SNS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소통의 장치이다. 주변 사람들과 나를 엮어주고 취미가 같은 이들을 찾아준다. 나 역시 이러한 창문을 통해 내 글을 공유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올릴 이 포스트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진 않은가? 남을 보며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되진 않은가? 내 재력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SNS란 알에 점차 둘러싸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윌과 같이 그것을 깨고 나올 필요가 있다.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를 처음 접한 작품은 아마 어렸을 적 보았던 ‘디파티드’였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내가 아는 그 건실해 보이는(?) 중년이 이렇게 소년미 넘치고 반항끼있는 소년이었다는데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을 보면서도 연기에 감탄한다. 숀을 껴안고 우는 씬도 볼 때마다 저기까지 연기 아니야? 하며 의심하곤 한다. 로빈 윌리엄스의 숀 역시 하나의 인간이자 멘토인 ‘선생’으로 더할 나위 없다. 또한 내면의 이야기와 갈등이 주요한 만큼 인물을 화면 비율에 따라 가깝게 비추며 마치 관객이 상담 공간에 같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주면서도 따듯한 인류애적 색감과 거친 윌과 친구들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지루할 틈을 줄였다.
굿 윌 헌팅은 확실히 울림을 주는 영화다. 긍정적인 생각과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때그때 가졌던 고민을 더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항상 도움을 받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지금 어떤 고민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던, 이 영화가, 그리고 보잘것 없는 이 글이 여러분에게 위로와 새로운 자극이 되길 바란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원하는 성과를 이루길 마음 깊숙이 빌어본다.
이 모든 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