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부 B씨의 외도를 A씨가 알게된 것은 결혼식 불과 3일 전이었다. 결혼식 약 한달 전부터 B씨는 누군가와의 연락과 약속이 잦았다. B씨는 그저 동호회에서 알게된 지인이라고 둘러 댔지만 뭔가 미심쩍었다. 동호회맨과 새벽까지 카톡을 나눈다고? 동호회맨과 단 둘이 약속을 잡는다고?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리고 수상했다. 의심의 굴레는 점점 더 커져갔고 항상 두통을 달고 다닐 쯤, A씨가 결국 흥신소에 전화를 건 시점은 바로 그때였다.
돈만 주면 다 되는 세상이다. 흥신소는 B씨가 밤 늦게 동호회맨 집에서 홀로 나오는 장면을 포착했다. 남녀 둘이서 집 안에서 오붓하게 할 수 있는 취미가 그거였다고? A씨는 경악했다. 그리고 B씨와 동호회맨이 꽤 뜨거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증거 또한 포착했다. 바로 이들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었다. "아 나는 자기가 결혼 정말 안 했으면 좋겠는데" / "하지 말까? ㅋㅋㅋ" / "응, 하지마라. 배아파 ㅋㅋㅋ".
"ㅋㅋㅋ??" 메시지를 본 A씨는 피가 역류했다. 그리고 격분했다. B씨와 동호회맨은 이미 메시지만으로 사정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A씨는 동호회맨에게 연락을 취했다. "우리 만나죠"
A씨와 동호회맨은 강남구청역 근처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A씨는 초초한 상태에서 자리에 앉아 동호회맨을 기다렸다. 다리를 떨었다. 손톱을 물어 뜯었다. 자꾸 목이 탔다. 커피 한 잔을 거의 다 들이켰을 때쯤, 저기 멀리서 동호회맨의 실루엣이 출연했다. 큰 키, 다부진 몸, 짙은 눈썹, 장난기 넘치는 얼굴, 근육에서 비치는 실핏줄. 그것들은 A씨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A씨는 오늘 동호회맨을 팩트로 폭행할 계획이었다.
"왜 그랬어요" /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 "어떡할건가요. 결혼이 코앞인데 책임을 지실 거냐고요" /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로 의도는 이게 아니었습니다" / "아니 사과를 들으려 만나자고 한 게 아니라니까" /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회맨은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죄송무새'로 변신한다는 계획이었나보다. A씨는 자신이 전문직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약 10개의 조항으로 된 합의서(또는 계약서)를 동호회맨의 굵은 팔뚝 아래로 들이밀었다. "뭔가요?" / "사인하세요".
계약서 안에는 '혼인이 파탄났을 시' 동호회맨이 책임질 내용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A씨에게 배상할 명확한 내용 말이다. 물론 '혼인이 파탄났을 시'에 적용되는 것이다. 내용 상당히 드셌다. '혼인 파탄 시 동호회맨은 A씨에게 5천만원을 배상한다' '혼인 파탄 시 언론 보도 및 SNS 폭로 시 동호회맨은 반박할 수 없다' 등 혼인 파탄이 현실화 됐을 시 동호회맨을 사실상 사회적 매장을 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동호회맨은 손을 떨며 해당 합의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무릎도 꿇으려 했다. 하지만 A씨는 단호했다. "그런 거 하지마요. 그런 거 한다고 용서가 되나요" /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 "사인했으면 우리 두 번 다신 보지 말자고" / "죄송해요.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 "다시는 B에게 연락하지 마요. 어떻게 되는지 알지?" / "예 그렇게 하고 죄송합니다. 그런 것이 아닌 의도였습니다".
동호회맨은 왜 그렇게 쉽게 합의서에 사인했을까. 이제서야 고백하건데 20대 초반의 순수한 청년이었고, B씨와 그가 갈 데까지 갔다는 어떠한 방증이 아니었을까. 합의서를 꼬깃꼬깃 접어 넣은 A씨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B씨의 장인 장모를 만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