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을 한 유명인 취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취재 명령이 떨어지는 곳 중 최악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이다. 슬픔과 죽음이 있는 곳, 그 안에서 기자들은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절규와 오열이 있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인물이다. 유명 연예인이었지만 오명을 남겼고 결국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지었다. A씨의 집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A씨의 시신이 장례식장에 안치되자 취재진 역시 장례식장 차가운 바닥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사진기자 '풀(POOL)단'의 대표 자격으로 갔다. 장례식장 사진취재는 나름대로의 룰이 있다. 생각해보자. 사람이 죽었는데 사진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플래시를 터뜨리는 모양새를. 그 모습은 언론도 대중도, 당사자 및 관계자들도 모두 싫어할 모습이다. 따라서 사진기자 중 풀단을 꾸려 대표(정확히는 순번제)로 한명이 장례식장을 찾아 빈소 안 영정사진 등만을 사진으로 담는다. 조문객 취재는 하지 않는다. 찍은 사진은 각 언론사에게 배포해 동일한 결과물을 준다.
이런 취재는 보통 고인이 소속된 회사의 관계자와 대화로 조율한다. 언제 방문해 어떻게 사진을 찍고 이 부분을 찍어 담겠다 등 세부사항을 다룬다. 하지만 사망한 A씨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A씨가 사망 직전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계자라는 사람이 장례식장에 전무했다.
결국 유족과 대화를 나눠야 했다. 언론에 대한 적대감이 가장 높은 사람인 유족과 말이다. 말을 걸었다. 저는 한국 언론을 대표해서 사진 취재를 하러 온 것이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을 수 있게 허락해달라. 마지막까지 가시는 길, 좀 더 품격 있는 모습으로 갈 수 있게 허락해달라.
내 부족한 머리에서 나온, 유족을 최대한 배려한다고 한 발언이다. 그리고 저 말들이 사실이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고인이 죽기 전 취재진과 마주한, 당황한 모습의 사진을 기사에 넣어 다루고 있었다. 적어도 그것만은 바꿔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유족들은 내부 회의를 한다고 했다. 기자는 '기다리는 자'의 약자이기도 하다. 또 한 없이 기다렸다. 멍 하니 앉아 장례식장 벽을 쳐다 봤다. 화장실을 갔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를 했다. 옆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눴다. "저 밖에 사람들 뭐야" "아, 기자들이래. A씨 빈소가 여기 있잖아" "많다 많아", 그리곤 한 마디 더 했다. "어후 정말 하이애나 같은 놈들".
나란 존재는 시체를 파 먹는 하이애나가 돼 있었다. 단지 일을 하러 온 것일 뿐인데. 회사가(혹은 협회가)시켜서 하는 일인데. 나쁜 일을 하러 온 것이 아닌데.
유족을 한 번 더 설득하러 다가갔다. 생각해보셨습니까.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잘 담아 보겠습니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이야기를 할 때 내 뺨이 따갑다는 걸 느꼈다. A씨의 아들이었다. A씨의 아들과 딸은 이미 방송에 출연한 인물이었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저주'하는 나를 '혐오'하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필살의 눈빛과 마주했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자 보다 흰자가 더 많았던, 내가 봤던 눈들 중 가장 무서운 눈이었다.
결국 유족은 빈소 안 취재를 허락해줬다. 신발을 조신하게 벗고 빈소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이 안의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빈소 안 모든 이들이 입장하는 나를 째려 보고 있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이들이 흰눈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봤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차가운 기운이 내 몸 전체를 휘감았다.
영정사진 앞으로 향했다. 나는 일을 하러 온 것이다. 등 뒤가 따가웠지만 감정을 느낄 새는 없었다. 묵묵히 셔터를 누르고 고인의 마지막을 담았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진정성을 보였다.
기계적으로 일했다. 강조하지만 감정을 담아선 안 된다.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노트북을 펼쳤다. 취재한 사진을 확인하고 사진기자협회 관계자들에게 결과물을 전송했다. 이 것으로써 나의 임무는 끝이났다. 성공적이었다.
이제 집에 가면 된다. 12시간 넘게 하루 종일 병원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늦겨울 어느 때였지만 추위를 느낄 새는 없었다. 전화로 취재를 마쳤다는 보고를 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노트북을 닫으니 장례식장 풍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모든 일을 마쳤으니 이제는 나 또한 평범한 대중이다. A씨의 죽음을 나는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A씨의 유족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나 또한 찬바닥에 앉아 있던 저들을 '하이애나'라고 지칭하던 화장실 그 사람들과 같은 분노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