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엄마는 사 남매를 두 칸 방에서 키우며 여러 가지 지혜를 발휘했다.
두 칸 방에 살던 때 엄마는, 작은 방은 부모님 방으로 쓰고, 큰 방은 우리 사 남매 방으로 삼았다. 큰 방 한가운데를 큰 책장 2개로 나눠 남자방, 여자방으로 나누었다. 책장을 두고 남은 공간은 문으로 쓰되 커튼을 달아 문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세 칸짜리 방으로 이사를 갔을 때에는 방에 침대를 만들어주셨다. 당시 슈퍼마켓을 하시던 엄마는 튼튼한 우유 상자를 모아 뒤집어서 방에 배열한 뒤, 커다란 합판을 주문해 침대를 만들었다. 그럴듯한 침대에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또 기억나는 건, 어린 시절 피아노 대회를 나가기 위해 검정 치마를 구해야 했는데, 엄마는 튼튼하고 두꺼운 비닐 같은 천을 구해와서 치마를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치마의 모습에 나는 조금 특별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 더 적절한 환경을 만들고, 물건들의 사용을 궁리해 다양하게 사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집에서 연년생 사 남매를 키워야 한다는 공간과 경제적 여건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도 같은 모습으로 결혼 생활을 했다. 4인용 소파를 붙였서 일자로 사용했다가, 2개로 나눠서 카페처럼 마주 보게 만들기도 하고, 'ㄱ'자 모양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책상을 2개 붙여 사용하기도 하고, 'ㄱ'자로 만들기도 하며 남편이 출근한 시간 동안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집 공간을 정돈했다. 남편은 퇴근할 때마다 집이 바뀐 모습을 보며 매번 새집에 이사 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업 실패로 힘들어하던 언니네 집에 엄마와 함께 위로차 가게 되었다. 언니는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는지 집에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카들이 초등학생인데도 유치원 때 받은 가정통신문조차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볼 지 모른다고 조카들의 교과서도 다 모아놓고 있었다. 형부 몰래 산 전집과 책들은 숨기느라 옷장에 들어가 있고, 옷은 밖에 나와 책장에 꽂혀 있었다. 해외 출장이 잦은 형부가 없는 자리를 언니는 책으로 채워 넣고 있었다. 하지만 그 채움이 선을 넘어섰고, 언니는 스스로도 이를 의식하게 되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나 보다. 사들이는 책은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감을 주었지만, 다른 이의 시선에서는 자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니는 숨기기 시작했고, 쌓아놓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언니네 집을 정리했다. 설득과 질책, 위로와 격려 등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가며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언니, 내가 집정리 하다보니 느낀건데 책은 책장에, 옷은 옷장에 있어야 가장 아름답더라. 책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세워놓아야 읽을 수 있어. 최근 몇 년 동안 읽지 않는 것은 대부분 앞으로도 읽지 않아. 예전에 아이들에게 해 주지 못한 미안함에 남겨 놓은 물건들은 계속해서 언니에게 죄책감만 불러 일으킬거야. 집 공간에 사람이 살아야지. 물건이 들어와 살면 되겠어?"
내 말을 듣던 언니는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 버리고, 비우고, 팔며 집안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언니 집을 치우고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언니는 책을 잘 비우지 못하고, 엄마는 옷을 잘 비우지 못하는 편이다. 나는 무엇으로 내 마음의 구멍을 메우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집 자체가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정리 정돈하고, 꾸미는 집이 내 마음 구멍의 마개였다. 그래서 가구를 이리저리 옮겼던 것 같다.
이후로 나는 좀처럼 가구를 옮기지 않게 되었다. - 물론 아이가 커가면서 필요한 가구 이동과 구입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소파는 거실에, 책장은 서재방에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과 비슷하다.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듯이, 물건이나 가구도 저마다의 위치와 역할이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