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시들고 있다
동네 근처에 새로 생긴 콩카페.
안은 평화스럽게 보인다. 여기서 점심으로 베트남 반미와 베트남 아메리카노라 할 수 있는 비나카노 블랙. 그리고 코코넛 조각.
콩 카페에서 파는 반미는 바게트가 매우 부드럽고, 맛도 좋은 편이지만 너무 부드러워 부스러기가 자꾸 떨어지고, 소스가 입에 묻는다. 코코넛 튀김은 달작지근하고 블랙 비나카노는 향기롭게 쓰다. 좋다. 부스러기가 떨어지든 말든, 입가에 뻘건 소스가 묻든 말든, 코코넛 조각이 건강에 좋든 말든... 그것만 생각한다면. 나만 생각한다면, 내 것만 생각한다면... 세상과 상관없이 나는 좋다.
그러나 나와 타인의 경계는 견고하지 못하다. 타인들의 세상은 나를 늘 침범한다.
뒷편에 앉은 여자 네명, 아마도 30대, 40대. 수다의 시끄러움이 보통이 아니다. 특히 한 여자는 꽥꽥 외친다. 목소리에 힘주고...다들 따라서 와그르 웃고...약 30명 앉는 좁은 실내는 정신이 없다. 아...나는 그들의 소리에서 스컹크의 방구 냄새를 맡는다. 역하다. 나는 등돌리고 앉아 창밖을 보았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치솟고, 구름은 수평으로 퍼져 나간다. 수직과 수평이 어우러지는 질서. 창밖은 평화롭다. 아니, 평화스러워 보인다.
20분 후쯤 그들이 나가자 실내는 갑자기 평화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떠들어도 적당한 소음은 정겹게 들린다. 결코 내가 특별하게 예민해서가 아니다. 나도 적절한 타인의 소란, 소음은 받아들일 줄 안다. 그런데 아까 그 여인들은 정말...유난스러웠다. 왜 저렇게 떠들까? 옛날에도 그랬나? 그랬을지도 모르지. 또한 나도 그랬을지 모른다.
소음과 소란이 가득한 사회. 나는 소음과 소란 속에서 스컹크의 방구 냄새를 맡는다. 더럽고 천하다. 사회, 정치는 물론, 우리의 일상에는 그런 것들이 심하게 배어 있다.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스컹크 인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수첩과 만년필, 샤프, 볼펜을 꺼냈다. 이제 나는 가급적이면 컴퓨터나 휴대폰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목디스크와 건초염. 이거 괴롭다. 글을 너무 많이 쓰고, 책을 너무 많이 써서 생긴 병이다. 지금 이글도 간신히 쓰고 있다. 주사 맞은 자리가 아프다.
오늘도 재활의학과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팔과 목디스크에서 오는 고통이 지겹다. 그래도 주사를 맞아 많이 좋아졌지만 쉽게 낫지는 않을 것이고 방심하면 또 재발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시들고 있다.
받아들이고, 조심조심 살아야지 어쩔 것인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다 가는 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