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하면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
‘단식 존엄사'라는 책을 읽었다.
대만의 재활의학과 여의사가 쓴 책인데, 그녀의 어머니는 '소뇌실조증'이란 유전병을 앓고 있었다.일어서서 걷지를 못하고, 쓰러디고,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병인데, 어머니는 그래도 늦게 발병한 거라고 한다. 그런데그녀의 외갓집 식구들이 다 유전병이 있어서 오빠, 남자 조카등이 그 병을 앓고,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자살도 하고...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힘든 노후가 훤히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 끝에 '단식존엄사'를 택했다.
곡기를 갑자기 끊은 것이 아니었다.어머니는 늘 두끼를 드셨는데 1일부터 10일까지는 한끼 반으로, 한끼로,반끼로 줄여나갔다. 생선이나 고기는 안 먹고 죽과 삶은 채소, 과일을 먹었으며, 매일 오일 한 스푼, 물 세잔씩을 마셨다. 오일은 올리브유, 호박씨유 등을 마셨는데 나중에는 가장 잘 맞는 호박씨유를 마셨다. 물에는 연근 가루를 섞어서 묽게 마시고...이때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지고, 가족과 이야기 나누고, 목소리가 밝아져서 즐거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허기를 전혀 못 느끼고, 위장통도 없었다.
11일째부터는 이러다가 갈 것 같지 않다며 어머니는 음식을 끊고, 세끼 모두 오일 한 스푼을 마셨는데, 텔레비전 보고, 가족과도 이야기 하며 컨디션이 괜찮았다. 그러다 12일째부터 사지가 쑤셔서 손발을 주물러주고...그러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늘 보고, 낮잠을 종종 잤다.
13일째부터는 연근물도 끊고, 그냥 물을 조금씩 마시고...오일을 마셨는데 허기를 안 느끼다가 14일째, 허기가 져서 뭔가 먹고 싶어했지만 참고, 오일을 마시니 훨씬 나아졌다. 점점 조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졌지만 텔레비젼 드라마 보았다.
15일째는 힘이 없고,,속이 불편하고, 입 냄새가 나서 면봉으로 입안을 더 자주 닦고, 낮잠을 잤다. 가족들이 손발 맛사지 해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16일째는 배가 고파 잠이 안 올 정도였다. 몸이 갑자기 쇠약해지고, 텔레비전 볼수가 없었다. 변이 안나와 힘들게 눟고,.입 , 엉덩이가 아프고, 사지가 쑤셨다.
18일째는 힘들어 하면서도 방문한 의사에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 했다.잠이 점점 길어지고,19일, 20일째는 소변이 점점 더 줄고, 호흡이 미약해졌다. 깊이 잠들고...가족은 어머니 귓가에 관세음보살 염불을 외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21일째, 호흡이 짧고 얕아지더니...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셨다. 83세의 나이였다.
내가 상상했던 곡기를 끊고 죽는 방법은 대장내시경 할 때 먹는 물을 먹고, 속을 일단 비운다. (20대 때 10일간 단식해보니, 배고픔도 그렇지만 숙변 때문에 괴로웠다. 이것을 없애기 위해서..원래, 단식하는 사람들이 먼저 속을 비운단다. ) 그리고물만 마시면서 죽는 것...그런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노르웨이 병원에서 지켜본 친구 말에 의하면 그렇게 갑작스럽게 곡기 끊고 죽는 노인들이 편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기간은 단축될 것 같다.
그런데 대만 여의사의 어머니는 비교적 편안하게 돌아가신 셈이다. 3주일 동안 중 2주일은 가족들과 즐겁게 보내다가 마지막 1주일 동안 힘이 빠지면서 배고픔에 시달리고, 몸이 쑤셨지만...큰 고통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잠을 많이 자다가, 잠속에서 고요히 돌아가셨다. 그런 과정에서도 어머니의 결심은 확고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것...80대 초반 되니, 그런 심리가 될 수도 있고...앞날의 병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니...그런 결심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딸이 알려준대로관세음보살을 외면서 아마 가셨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그리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고요히 자는 것인데...문제는 그 철지난 휴머니즘 아래서 의료법이 그걸 막는다는 거다. 유튜브에 보니 한국에서는 이런 식의 죽음이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옆의 가족이 먹을 것을 안 주고, 굶겨 죽일 수도 있기에...그렇다고 국가가 책임져 주지도 않으면서...죽음도 자기 자신이 선택 못하게 하는...상황이다. 대만도 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가능했나보다.특히 어머니가 유전병을 앓고 있기에...
아마 대만도 그냥 살다가 '나 갈란다...' 하면서 곡기 끊으면, 법이 막을 것 같다. 옆의 가족들에게 방기한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현재는 그것도 문제다. 앞으로 법이 바뀌었으면 좋겠는데...노르웨이는 병원에서 그걸 허락한다고 한다. 근데 거기는 갑자기 곡기를 끊는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것을 하려면 우선 본인의 결심이 확고해야 한다. 희망없이 병을 앓든...혹은 사는 게 지겨워서...기타 등등. 그리고 종교적 관점이 뚜렷한 사람이 견디기 쉬울 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 요영병원이 아니라, '세상 떠나가는 집' 같은 것이 만들어져서...간호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가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은 내가 보기에...'아름다운 일'로 보이는데...그만, 그 막막한, 방향없는 '휴머니즘'..때문에 법을 못 만든단다. 국가가 책임져주지도 않으면서, 각 개인, 집안이 몰락하고, 파탄나는데도...휴머니즘을 내세우며, 그걸 못하게 하면...너무 위선적인 것 같다.
하긴...우리 모두 '위선'으로 가득찬 천지에 살고 있다...답답할 때가 많다. 과거부터 내려온 그런 관습, 가치관이 그럴듯해 보이는데 사실은 현실에서 다 망가지고 있다.그걸 보면서도, 빨리빨리 대처하지 못하는데...각 개인에게 맡기든지...뭘 못하게 법으로 막는 이런 현실은 무엇인가? 물론 이런 식의 죽음에 대해서는반론도 있고, 부작용도 있겠지마...지금 현실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안락사나 자살은 반대한다. 그렇게약물로 금방 가기 보다는...차차, 곡기를 줄여가면서...인식하면서...기도하면서...그렇게 서서히, 자연스럽게 죽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가?세상의 수많은 동물들이 다 그렇게 곡기 끊고 죽는다...인간만이 억지로, 온갖 주사기, 약물로, 희망없이 삶을 무조건 연장시키려고 한다. 좀 멍청한 짓 같지 않나?
하긴, 나의 부모는 다 돌아가셨고, 이제 내 차례이기에 이런 이야기 당당하게 하지...자기 부모를 이렇게 돌아가게 하겠다는 말은 자식들이 못한다. 결국 당사자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거다. 자신의 병 때문이든, 이제 이 세상이 지겨워서든...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아마 10년, 20년 후에는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게 빠르게 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