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다양한 홍콩 금융맨 / 우먼들에 대하여
홍콩의 대규모 은행이라고 하면 가지는 선입견들이 있다. 첫 번째 관문은 은행.. 은행원? 창구에서 일하는 사람? 에 한정돼 생각하는 시선이고, 두 번째 관문이라 하면 검은 서류가방에 슈트차림, 주식 그래프 읽는 사람을 떠올리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관문은? 은행 = ATM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렇지 않다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선입견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나의 피곤한 루틴이 되었기 때문에, 그걸 덜어주어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은행에 대해서 하나도 아는 게 없었고, 은행에 6개월짜리 인턴으로 지원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는 정말 다른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다.
쉽게 말해, 은행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큰돈, 즉 부자들과 기업들의 돈을 만지는 투자은행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일반 은행들은 계좌를 만들고, 입출금을 도와주고 할 것이다 (사실 그것도 극히 작은 부분을 설명하는 거지만). 사회의 작은 개인들부터 소상공인, 나아가 중견기업, 대기업, 정부, 상위 0.01% 갑부억만장자까지의 돈을 다 관리하는 큰 은행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그런 대규모 은행이다. 그러다 보니, 그 안의 작은 조직들이 정말 많다. 사내 앱과 각종 서비스를 담당하는 팀, 보안 및 법률 담당 팀, 투자 관련 팀, 여기에 그걸 나열하자면 하룻밤을 꼴딱 새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부서가 있다 보니 회사 식당에서 스치는 사람들도 전부 다른 부서에서 왔다. 인턴으로 일하던 중, 친절한 매니저 분 V 님이 선뜻 나와 다른 인턴들을 불러 본인의 지인 약 10명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셨다. 본인의 학창 시절과 사내 동기 등 여러 우연으로 만난 분들을 모아 커피챗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처음 만난 분은 바로 투자 쪽 K 씨였다.
K 씨와 만나볼 시간이다.
홍콩인 남성으로, 30대 중반쯤으로 예상되는 K 씨는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V 씨와의 Cambridge 대학 동기인 K 씨는 공대를 졸업했지만 가족 중 한 명도 금융권 출신이 아니라 괜한 호기심과 도전 정신에 영국에서 은행 인턴을 해보고, 은행의 매력 (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페이다.)에 빠져 아직까지 금융맨의 길을 걷고 계신 분이다. 전형적인 브레인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분이지만 이 분의 눈에는 피곤이 쌓여 있었다. 말을 너무 조용히 하셔서 커피챗을 하는 내내 고개를 그분 쪽으로 숙여서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이 분의 얘기 중 90%는 얼마나 미국 은행들의 워라밸이 나쁜지와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업무, 그리고 이 상사, 저 상사의 압박을 견디며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부서에서의 스트레스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하시는 일의 최대 장점이 뭔가요?
인턴 동기가 물었다.
financial compensation. 한 마디로 돈이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짐작은 갔지만, 돈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으면 했던 건 나의 낙관이었을까.
한 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높은 연봉을 제안받고 스카우팅 당한 K 씨는 정말 전형적인 "모범생"의 느낌이었다. 머리도 좋은데, 노력을 곁들인 유형이다. 커피챗을 위해 마련한 듯한 회사 카페의 오픈된 공간에 있어 아무도 우리의 대화 소리를 듣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셔서 내내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간혹 회사에서 이런 분들을 자주 본다. 머릿속으로 조용히 계속해서 계산을 하고, 말을 함부로 내뱉기 전에 필터링을 거치고,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는 분들.
초코 두유를 시켰는데 맛이 너무 없어서 새로운 음료를 시키고 와야겠다.
흐르는 강물과 같이, 때로는 이어지고 때로는 갈라지는 형태로 연재를 할 예정이니 저의 구독자가 되어 꾸준히 읽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