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정조의 효심으로 만들어진 사찰

by 김인숙

정조의 효심으로 만들어진 사찰

지난 3월 17일 화요일, 화성에 있는 용주사를 찾았다. 용주사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궁(齋宮)이자 능침사찰(陵寢寺刹)이다.


용주사 지도.jpg 용주사 안내도
용주사 전도.PNG 용주사 안내도(용주사 홈페이지)


정조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평생의 한이었다. 늘 아버지의 원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 같아 괴로워했다. 어느 날 장흥(長興) 보림사(寶林寺)의 보경(寶鏡) 스님을 만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듣고 깊은 감동을 느꼈다. 정조는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절을 세울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불교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에서 절을 세우는 일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평소 정조는 백성들에게 효를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은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정조는 '부모은중경'을 불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백성들에게 효를 널리 전하고 강조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정조는 양주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명당으로 알려진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융릉)을 만들었다. 그리고 현륭원을 수호하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신라 시대에 세워졌으나 소실된 ‘갈양사(葛陽寺)’ 터에 7개월에 걸쳐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바로 용주사다.


갈양사(葛陽寺)는 신라 말기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했다. 염거화상은 5교 9산 중 하나인 ‘가지산문’의 제2대 조사다. 이후 혜거국사가 중흥을 일으켜 왕실의 원찰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


용주사현판1.jpg 용주사 현판


현재 용주사는 정조의 효성이 깃든 효심의 본찰(本刹)로 불심과 효심이 함께하는 사찰이며 경기 남부의 100여 사찰을 거느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자리잡았다. 1790년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지었다.


용주사 안내는 브런치 글벗 소오생 작가님이 해주셨다. 최근 수원을 자주 방문했는데 작가님이 댓글을 통해 다음에 올 때는 안내를 맡아주겠다고 하셨다. 현재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라 죄송스러웠으나 덕분에 편하게 용주사와 융건릉, 그리고 보적사와 세마대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중국어 교수님답게 수수께끼 같은 한자를 수려하게 풀이해 주셨고 심도 깊은 불교 철학을 배운 뜻깊은 시간이었다.


일주문 없는 사천왕문

용주사는 일주문 없이 사천왕문이 정문 역할을 맡고 있다. 예전에 나는 천왕문 앞을 지나는 것이 무서웠다. 종교가 기독교인 탓도 있었지만 사천왕문을 지날 때 양옆에 놓인 사천왕이 크기도 크고 얼굴도 우락부락하게 생겨서 겁이 났다. 그래서 일부러 옆을 쳐다보지 않고 얼른 지나갔다.


용주사 사천왕문.jpg 용주사 사천왕문


그러나 내가 무서워했던 사천왕(四天王)은 동서남북을 지키는 착한 수호신이라고 한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비파를 들고 웃고 있는데 작은 악귀를 밟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손에 용과 둥근 구슬을 들고 있다. 증장천왕은 온몸이 붉고 눈이 사나우며 역시 발밑에 악귀를 누르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손에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데 화려한 관을 쓰고 늘어진 수염을 가지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작은 탑과 창을 들고 있다. 이들도 역시 발밑에 몸부림치는 악귀를 누르고 있다.


용주사 정문3.jpg
용주사 정문4.jpg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카페 화산이 있고 정면에 홍살문이 눈에 띈다. 절에 홍살문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보통 홍살문은 유교 시설(서원, 향교)이나 왕릉 앞에 세워지는데 사찰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이다.


용주사 홍살문1.jpg 홍살문과 삼문


그러나 여기서 이 용주사를 누가 만들었는가를 다시금 새겨야 한다. 바로 정조가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궁궐의 건축 양식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용주사 호성전에는 사도세자와 정조 등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를 지내 왔기 때문에 홍살문을 세운 것이다.


대웅전으로 가기 전에 있는 삼문(三門) 역시 좌우에 문이 있다. 이곳 역시 궁궐이나 관아의 정문 같은 느낌을 준다. 삼문 기둥에는 ‘용주사불(龍珠寺佛)' 네 글자를 첫 글자로 하는 4구 시구가 주련(柱聯)으로 걸려 있다. 주련(柱聯)은 기둥이나 벽에 글귀를 세로로 써서 붙이거나 걸어 놓은 것을 말하는데 기둥마다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주련은 건물의 성격을 암시하기도 한다.


용주사 입구.jpg 문이 3개인 삼문


龍蟠華雲(용반화운)

용이 꽃구름 속에 서려있어

珠得造化(주득조화)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네

寺門法禪(사문법선)

사찰의 문에 이르러 법선을 행하며

佛下濟衆(불하제중)

부처님 품 안에서 중생들을 구제하네


용주사 상량문(上樑文)은 삼문 안쪽에 걸려 있다. 상량문은 주황색 비단에 쓰였는데 창건 당시 정조의 명으로 채제공이 썼다. 용주사의 창건배경과 국왕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다.


1 용주사 상량문.PNG 채제공이 쓴 용주사 상량문(자료-효행박물관)


최근 보물로 지정된 천보루(天保樓)

삼문을 지나 절 경내에 들어서면 대규모의 누각이 보인다. 하늘이 보호하는 누각이라는 뜻의 천보루(天保樓)는 1790년 당시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건물이다.


천보루3.jpg 천보루


천보루의 아래층은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통로로 여섯 개의 목조기둥 아래 높다란 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다. 대체로 사원 건축에는 목조기둥을 사용하고 석조기둥은 궁궐 건축에서 사용한다.


천보루에 새겨진 주련(柱聯)은 소오생 작가님이 원어로 읽으며 해석해 주셨다. 이중 첫 번째 구절과 마지막 구절은 대구(對句)를 이룬다.


空看江山一涕快(공간강산일체쾌)

텅빈 마음으로 강산을 바라보니 모두가 가을이요

母年一百歲(모년일백세)

부모님 연세 백 살이 되어도

常憂八十兒(상우팔십아)

팔십 먹은 자녀를 항상 걱정하시네

欲知恩愛斷(욕지은애단)

은혜와 사랑이 끝나는 때를 알고자 하면

命盡始分離(명진시분리)

목숨이 다하는 순간 비로소 자녀걱정 사라진다네

不待東風自有春(부대동풍자유춘)

동풍이 불지 않아도 저절로 봄이로다


그런데 들어갈 때는 누각 이름이 천보루라 쓰였고 안쪽에는 홍제루(弘濟樓)라 쓰여있다. 즉 밖에서는 천보루, 안에서는 홍제루로 같은 누각의 이름이 두 개로 불려지고 있다. 후대에 홍제루라는 별호가 추가된 이유는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는 곳이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제도한다[弘濟]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홍제(弘濟)는 정조의 호(號)다.


대웅전 기와2.jpg
홍제루22.PNG
대웅전의 화려한 누각 & 홍제루 현판


최근(2월 26일) 보물로 지정된 천보루는 궁궐의 누각처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내가 용주사를 방문하기 얼마 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니 따끈하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김홍도가 그린 대웅보전 후불탱화

용주사에서는 꼭 챙겨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대웅보전에 있는 후불탱화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김홍도 혼자 그린 것은 아니다. 당대의 이름 높은 화가였던 김득신, 이명기, 그리고 도화서 화원 등 25명이 함께 그렸는데 서양화의 명암법과 원근법이 적용된 파격적인 불화다.


일설에는 왕명을 받은 김홍도의 주관 아래 민관(旻慣), 상겸(尙謙), 성윤(性允) 등 최고 화승 25명이 참여해 서양화 음영법을 도입해 제작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김홍도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더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인물의 얼굴과 옷 주름에 음영을 넣어 평면적인 기존 불화와 달리 입체감이 느껴진다. 얼굴 중에서도 코와 턱 부분에 들어간 명암은 서양화의 기법이다. 또 인물들을 배치하면서 뒤로 갈수록 작게 그려 넣는 원근법을 활용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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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2.jpg 대웅보전의 후불탱화


삼세불(三世佛)로 알려진 현세의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있고 왼쪽에는 과거의 연등불(또는 약사불), 오른쪽에는 미래의 미륵불(또는 아미타불)이 그려져 있다. 색채도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가 선명하면서 화려하다.


인물들도 부처님 주변의 보살들과 제자들의 표정이 제각기 살아있어, 마치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삼세불의 후불탱화는 세로 440㎝, 가로 350㎝로 비단에 채색한 상당히 큰 불화다.


후불탱화 중앙 석가모니불 머리 위를 보면 빨간 바탕에 왕실의 안녕을 비는 축원문이 적혀 있다. 대웅보전에서는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눈치껏 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후불탱화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다.



용주사 대웅전 탱화.PNG 후불탱화 속 글씨


主上殿下 壽萬歲(주상전하 수만세)

慈宮邸下 壽萬歲(자궁저하 수만세)

王妃殿下 壽萬歲(왕비전하 수만세)

世子邸下 壽萬歲(세자저하 수만세)


여기서 ‘자궁저하’는 혜경궁 홍 씨를 말한다.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처님을 모신 곳을 대웅전이라 부르고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곳을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용주사는 ‘대영웅 석가모니불을 모신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에서 대웅보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1 대웅보전 현판.PNG 대웅보전 현판(정조의 글씨)


용주사 대웅보전은 1790년 창건과 함께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로 보경당(寶鏡堂) 사일(獅馹) 스님이 팔도도화주(八道都化主)를 맡아 대웅보전을 비롯한 145칸의 전각을 함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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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전경(서 계시는 분이 소오생 작가님이다)


당시에 실학자 이덕무가 용주사의 여러 건물에 주련을 썼다고 알려졌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대웅보전은 1790년에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와 개축이 있었으나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2017년 8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42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기와.jpg 대웅보전의 화려한 기와


효행박물관

용주사 사천왕문과 홍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효행박물관이 보인다. 지난 2005년 1월 28일 개관한 효행박물관은 정조의 효심을 일깨운 불설대부모은중경(부모의 은혜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과 왕실 하사품, 그리고 조선시대의 동자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효행박물관2.jpg 효행박물관 입구


효행박물관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슬러퍼로 갈아 신고 관람했다. 전시된 것이 많지는 않아 금방 둘러볼 수 있지만 꼼꼼히 살펴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조는 부모의 은혜를 강조한 ‘부모은중경’을 목판에 새겨 보관하게 했는데 이 목판도 전시되어 있다. 용주사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효(孝)’를 상징한다.


판화.jpg 부모은중경 경판


부모은중경 경판은 지난 2012년 보물 제1754호로 지정되었다. 효행박물관에는 보물 4점과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11점,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2점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면 족자나 액자를 만들 수 있는 그림을 살 수 있다. 화선지에 찍혀 고급스러웠다.


효행박물관 체험관.jpg
족자.jpg
전시장에서 살 수 있는 효에 관한 글들


이뭐꼬.jpg 이뭣고 바위


효행박물관 앞에 묘한 글자가 쓰인 바위가 있다. 이 역시 소오생 작가님이 설명해 주셨다. 문화해설사와 함께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불교 선종에서 ‘이뭣고’는 간화선(화두선) 수행의 대표 화두로,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의심을 극대화해 마음을 집중시키는 방식이라고 한다. 즉 수행은 화두를 단순히 해석하기보다 떠오르는 생각을 놓아두고 ‘의심’ 자체를 전심으로 삼아 깨달음에 이르는 흐름이다.


곁들여 소오생 작가님은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큰 화두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되는 듯하다.


부모은중경 탑

부모은중경은 부모님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깨닫고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를 제시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간행되어 널리 읽혔다.


효행탑.jpg 부모은중경 탑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10가지


첫째, 懷耽守護恩(회탐수호은) 품에 품고 지켜 주신 은혜

둘째, 臨産受苦恩(임산수고은) 해산 때 고생하신 은혜,

셋째, 生子忘憂恩(생자망우은) 자식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넷째, 咽苦吐甘恩(인고토감은)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은 먹여주신 은혜,

다섯째, 回乾就濕恩(회선취습은)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준 은혜,

여섯째, 乳哺養育恩(유포양육은) 젖 먹이고 길러주신 은혜,

일곱째, 洗濯不淨恩(세탁부정은) 더러운 것을 씻어주신 은혜,

여덟째, 遠行憶念恩(원행억념은) 먼길 떠나면 걱정하는 은혜

아홉째, 爲造惡業恩(위조악업은) 자식 위해 궂은일마다 않는 은혜.

열 번째, 究竟憐愍恩(구경연민은)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시는 은혜.


효행박물관 앞에는 부모은중경 탑이 있다. 탑 4면에는 부모은중경 10가지를 새겼는데 글을 모르는 일반백성들을 위해 그림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변상도를 그려놓았다.


이 탑은 1981년 3층 구조의 석탑으로 조성되었으며, 용주사의 창건 이념인 효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용주사 동종1.jpg
1 범종.PNG
용주사 범종(오른쪽이 국보 제120호 범종)


용주사 범종(梵鍾)은 국보 제120호로 고려 초기의 종으로 추정되며, 비천상과 조각이 매우 아름답고 보존 상태가 뛰어난 국보다. 전각 안의 범종은 색채가 화려하다.


호성전(護聖殿)

용주사에서 눈여겨볼 곳은 호성전이다. 정조의 효심은 일반적인 제사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대웅보전 옆에 호성전을 건립했다.


효성전.jpg 호성전


정조는 팔작지붕의 궁궐 형식으로 지어진 호성전에 아버지의 위패를 모셔두고 현릉원에 들릴 때마다 새벽, 한낮, 해 질 녘, 초저녁, 한밤중, 자정 이후로 여섯 번의 재를 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조의 효심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이후 호성전에는 정조대왕, 경의황후(혜경궁 홍 씨), 효의왕후 김 씨(정조의 왕비)의 위패를 차례로 모셨으며 이때마다 49재(영산재)는 물론 속절제와 기신제를 올려 극락왕생을 빌었다.


호성전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후 일반 맞배지붕으로 중건되었다. 2020년 8월, 누전 사고로 안타깝게 전소되었다가 다시 복원했다.


효성전 내부.jpg 호성전에 모셔진 위패


호성전 안에는 사도세자(장조), 혜경궁홍 씨(정조의 어머니), 정조대왕, 효의황후(왕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 위패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1호 ‘화성 용주사 목조불패’의 복제품이며, 원본은 효행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도 용주사에는 천 개의 작은 불전이 봉안된 천불전(千佛殿), 지장전, 관음전, 범종각, 법고각, 시방칠등각, 불음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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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jpg
천불전 현판과 천 개의 불전이 봉안된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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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jpg
시방칠등각 & 약수


시방칠등각은 전각 이름이 특이하다. 시방(十方)이란 무수한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하고 칠등(七燈)은 북두칠성을 가리키므로 결국 칠성각과 동일한 뜻이다. 이곳에는 칠성, 산신, 독성이 탱화로 봉안되어 있어 삼성을 모시는 삼성각(三聖閣)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세존 사리탑(世尊 舍利塔)

삼문과 천보루 사이에 세존 사리탑이 있다. 용주사의 원래 절이었던 갈양사(葛陽寺) 때 성정(性淨) 스님이 부처님의 사리 2과를 사리병에 담아 이 탑에 모셨다고 전해진다. 석가모니 부처의 다른 이름이 세존이어서 세존 사리탑이라 불렀다.


높이 4m의 오 층 석탑인 세존 사리탑은 만든 방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이라고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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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 사리탑 설명1.jpg 세존 사리탑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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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전경12.jpg 용주사 전경


용주사를 둘러본 후 융건릉으로 향했다. 시간이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소오생 작가님이 안내하는 식당 미꼬담으로 갔다. 전복 미역국과 꼬막 비빔밥이 메인으로 나오는 한식으로 반찬이 정갈하고 아주 맛있었다. 운전을 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작가님의 구역이라며 점심까지 사주셨다. 미꼬담은 융건릉 정문 바로 앞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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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1.jpg


점심 식사 후 융건릉을 둘러보기 위해 매표소에서 표를 샀다.




-다음 호에 계속-


<참고자료>

용주사 홈페이지

정조실록

국가유산채널

디지털장서각

국가유산청

화성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