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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손 Nov 10. 2022

나무색은 어떤색 인가요?

바나나우유는 하얗다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본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아마도 국민...아, 아니 초등학교 시절인 듯싶다.


그 시절에 나무를 그리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친절하게도 ‘나무색’ 라벨이 붙은 크레용이 있어서 '나무색'으로 기둥을 그리고 잎은 초록색으로 뭉글뭉글 칠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의아한 것은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들과 산에서 보는 나무색과 달랐을 텐데 별 의심 없이 썼다는 것이다.


나무색은 다양해서 애매하다. 아마도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엇이든 정확히 규정해야 하는 당시의 -아마도 지금도 - 교육방식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매한 것은 이것도 저것도 될 수 있는 열린 것인데 항상 정답이 같아야 하는 분위기가 상업적 제품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무색이라고 불렀던 것은 사실 나무의 겉보다는 속 색깔에 가까웠다. 짙은 고동색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나무의 겉이 그런 색인 경우는 없다.

바나나 우유가 노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바나나는 껍데기가 노란 것이지 먹는 속은 하얗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나 우유는 하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를 내세우며 하얀 바나나우유가 출시되었을 때 무릎을 치며 너무도 상식적인 것에 감탄한 적이 있다.

나무색이 그렇게 된 것도 비슷한 연상작용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보는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는 바로 그 ‘나무색’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나무의 속 색깔에 가깝다.


말이 생각을 규정한다 했다. 

아마도 내 부족한 예술적 창의력이 답을 정해주는 방식의 색깔 이름 탓이 아닐까 하고 엉뚱한데 화살을 돌려보기도 한다. 다양한 인종을 고려하지 않은 ‘살색’이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키며 없어졌듯이 나무색도 없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살색'처럼, 여러 종류의 나무를 알고 보면 나무색을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임을 알게 된다.


목공 동료들과의 단체전시회에 5단짜리 키큰 서랍장을 출품한 적이 있다.

대부분 서랍장은 옆과 뒤가 막혀있어서 서랍이 닫혀있을 때 옆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서랍재는 같은 종류의 비교적 가볍고 저렴한 나무를 쓴다. 그런데 이 디자인은 서랍 레일과 서랍옆판, 뒤판까지 보이는 개방형이어서 사주경계라도 해야 하는 디자인이다.


사실 사방이 개방된 형태는 서랍 속에 먼지를 부르는 구조라서 실용성을 따지면 그리 선호할만한 구조는 아니다. 그래도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특유의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다. 민망하지만 디자인에 대해 어디서 공부한 적도 없고 고매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만드는 것이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한다.


열 가지 종류의 원목을 사용한 키큰 서랍장. 색칠한 거 아님!!



패션쇼의 옷이 실제 입는 옷과는 거리가 멀고 실험적이고 화려한 것처럼 출품작도 실용적 요소보다는 디자인 요소를 강조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열 가지 목재를 사용한 키큰 5단 서랍장이다. 물론 색깔을 따로 칠한 것은 아니고 고유의 색깔이 각기 다른 개성적인 나무를 택했다. 각 나무의 원산지를 보면 아프리카 대륙부터, 유럽, 북미, 아시아까지 아우른다.

한 목공 작품에 각 대륙의 나무를 담아 전 지구적 조화를 상징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나무의 사용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어쩌고 저쩌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여러 대륙의 여러 나무가 모인 것은 순전히 우연일 뿐이고 사실은 단순히 나무의 색깔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이다.


관람객 중 ‘색깔을 자연스럽게 참 잘 칠했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많았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고 나무가 그런 색을 띤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출품하고 행여나 팔리면 서운해서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외면받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불행히도 혹은 다행히도 이 작품은 전시회 첫날 압화(Pressed flower)갤러리를 운영하는 작가에게 팔리고 말았다. 그나마 자연물을 이용해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에게 낙점되었다는 것에 아쉬움이 조금 덜 했다.


그분의 갤러리에 형형색색의 꽃 색깔에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제 색깔을 뿜어내고 있을 작품을 상상해본다.


지겹더라도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사진의 나무색은 칠한 것이 아니고 원래 타고난 나무의 색이다.

자 이쯤 되면 누가 나무색을 '나무색'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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