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홀 미팅에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보통 회사 다니듯 할 거면 남지 말라”고.
남을 사람만 남으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독려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건, 그 말이 전혀 처음 듣는 메시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2023년 4월, 면접 자리에서 대표는 말했다.
곧 양산이 시작될 거고, 그에 맞춰 팀원도 2~3명 더 충원할 예정이라고.
성장에 대한 이야기였고, 확장에 대한 약속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이 조직이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양산은 오지 않았고, 팀원 충원도 없었다.
입사 당시와 비교하면 국책 과제의 규모는 약 5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과제가 늘어났다는 이유로 제조 인력과 개발자는 추가로 채용되었지만,
공급망과 구매, 일정과 리스크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SCM은 끝내 나 혼자였다.
대신 어느 순간부터 “남을 사람만 남으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은 내게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 대한 설명도 아니었고, 조직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유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조건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남으라는 말처럼 들렸다.
몇개월 전 회사는 가족친화인증을 받았다.
대표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링크드인에 올렸다.
회사가 얼마나 사람을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하지만 타운홀에서의 말과 그 게시물 사이에는 아무런 설명도, 연결도 없다.
남으라는 건 어떤 조건에서인지,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책임도 없었고, 조건도 없었고, 약속도 없었다.
그저 남을 사람만 남으라는 말만 있었다.
그 말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게는,
지금의 삶을 유지한 채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사실상 선택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이 ‘각오’를 묻는 말이 아니라 ‘감당 가능성’을 시험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험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누가 남을 수 있는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