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홀 미팅에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보통 회사 다니듯 할 거면 남지 말라”고. 남을 사람만 남으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독려처럼 들리지 않았다. 선별처럼 들렸다. 그리고 경고처럼 남았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하나 겹쳐 떠올랐다.
우리 회사는 올해 가족친화인증을 받았다.
대표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링크드인에 올렸다. 회사가 얼마나 사람을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남으라는 말과 가족친화라는 단어 사이에는 설명이 없었다.
남으라는 건 어떤 조건에서인지,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남을 사람만 남으라는 말만 있었다.
그 말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게는,
지금의 삶을 유지한 채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사실상 선택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이 ‘각오’를 묻는 말이 아니라 ‘감당 가능성’을 시험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험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누가 남을 수 있는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