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옮긴 줄 알았던 건 회사만이 아니었다.
외국계 대기업에 있을 땐,
협업도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아도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스타트업에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예측 불가”라는 것이 때론 가장 위험하다는 걸.
나는 전에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했다.
본사와의 컨퍼런스 콜은 영어로,
공급망은 수십 개국을 넘나들었고,
문서 하나를 올리기 위해도 수많은 승인 절차가 있었다.
그때는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까지 절차가 많지?”
“내가 뭘 하려면 왜 이 많은 사람의 사인이 필요하지?”
그런데 지금,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절차는 “안전장치”였고,
그 협업은 “리스크 분산”이었다는 걸.
대기업에서는 시스템이 무거웠다.
반대로 스타트업에서는 사람이 무겁다.
누가 하나 빠지면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못하면, 그대로 제품이 멈춘다.
그리고 그 부담은 대부분, 말 없는 사람에게 쌓인다.
지금 나는 그 사람이다.
처음엔 좋았다.
내가 할 줄 아니까,
영문 메일도 내가, 송장 검수도 내가, 제조 대응도 내가.
그런데 그건 곧 “너니까 다 해”가 되었고,
“잘하니까 시키자”가 되었고,
어느 날 보니 모든 게 내 업무가 되어 있었다.
대기업이 낫다거나,
스타트업이 힘들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조직의 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모든 무게가 사람에게 실릴 때의 위험성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나 같은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그 시스템 덕분에 ‘혼자’ 일하지 않아도 됐던 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