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 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그건 제가 다 하고 있어요”다.

이 말이 나오면 일이 정리된 것 같고,
담당이 명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회계팀에서는 대표에게
“수불부도 제가 다 하고 있어요”라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그 말만 들으면 업무가 한쪽에 과도하게 몰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 업무 흐름은 조금 달랐다.

출고가 있을 때마다 상품 품목 리스트가 전달된다.

그리고 요청은 늘 같았다.

“나간 수량이랑 품목만 체크해 주세요.”

그리고 결국, 일은 이렇게 정리된다.

매달 월마감이 되면 회계팀에서는 품목 리스트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입고·출고 수량만 표기해 주세요.”

이쯤 되면 ‘수불부를 누가 한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진다.

수불부를 쓴다고 말하는 사람과 수불부를 완성시키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수불부를 쓰지 않는다.
다만, 수불부가 완성되도록 숫자를 채운다.

재고실사도 내가 혼자 한다.

문제는 이게 협업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협업이라기엔 책임의 방향이 이상하다.

작성은 내가 한다고 말하면서, 검증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구조.

말로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이 구조의 위험은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숫자가 맞는 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그때부터 책임은 빠르게 사라진다.

“나는 적었을 뿐이고”
“그 숫자는 받은 자료였고”
“확인은 그쪽에서 했잖아요”

그리고 결국 남는 건 확인해 준 사람의 이름이다.

회사에서 진짜 위험한 건 실수가 아니다. 실수는 고칠 수 있다.

진짜 위험한 건 책임이 문서로 남지 않는 구조다.

누가 일을 했는지는 모두 기억하지만, 누가 책임지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건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다.
누가 일을 더 많이 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조직이 ‘담당’과 ‘책임’을 같은 말처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수불부를 쓴다는 말과 그 숫자에 책임진다는 말은 다르다.

그 차이를 정리해 주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계속 억울해지고
어떤 사람은 계속 확인만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책임은 점점 흐려진다.


묻고 싶다. 회사는 “누가 한다”가 아니라 “누가 책임진다”를 문서로 설명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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