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숨만 쉰다고,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항암이 이렇게 무서운 건지 진짜 몰랐다.

엄마는 2025년 4월에 수술을 했다. 그리고 5월, 항암을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항암 1차를 마친 뒤, 엄마가 잘 걷지 못하기 시작한 건.

너무 무서웠다. 평생 이런 상태가 계속 될까봐.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릴 지 의사도 말을 아꼈다.


엄마의 걸음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속도가 느려진 정도가 아니었다.
균형을 잡지 못했고, 다리에 힘이 빠져 자주 멈춰 섰다.

의사는 말했다. 중단하지 말고, 용량을 줄여서라도 3회는 채우자고.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몸은 그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엄마는 포크조차 쥐지 못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식탁 위에서 식기가 미끄러졌다.

일어서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어느 날은 앞으로 꼬꾸라지듯 넘어졌다.
포크를 떨어뜨리고, 자기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건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었다.

자기 몸이 무너지는 장면을 스스로 목격하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숨만 쉰다고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항암을 중단했다.

시간이 흘렀고, 12월이 되었다.

혈압이 자꾸 떨어졌고, 손과 발의 떨림과 기력은 어느 정도 회복했으나 몸은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림프 전이가 심각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엔 선택의 무게가 달랐다.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래서 엄마는 다시 항암을 받기로 결심했다.
용량을 줄여서라도.

그리고 2026년 1월 6일, 용량을 줄인 항암을 다시 했다.

오늘 통화를 했다. 엄마는 말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일어나질 못하겠다고.

손이 떨려서 아무것도 제대로 쥘 수 없다고.

나는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장면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항암을 하면 병은 줄어들 수 있다.
수치는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걷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먹지 못한다.

그때 보호자는 숫자와 사람 사이에 서게 된다.

의사는 차트를 보고 말한다.
하지만 보호자는
포크를 쥐지 못하는 손을 보고,
일어서다 주저앉는 다리를 보고,
넘어진 뒤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을 본다.

이건 차트에 다 담기지 않는다.


사람이 숨만 쉰다고, 산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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