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를 받아야 해서”

by 혼자서도 합니다만

아빠는 엄마가 “회사 그만두고 나를 좀 돌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김없이 같은 말을 꺼냈다.

“실업급여를 받아야 해서.”

그 말은 늘 자동처럼 튀어나왔다.
마치 주문처럼, 마치 방패처럼.

아이러니한 건,
그 사람이 바로 엄마 앞에서 수없이 말해왔다는 사실이다.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그 말은 언제나 비장했고,
언제나 확신에 찬 어조였다.
하지만 정작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기준은 늘 실업급여 수급 요건에 맞춰져 있었다.

죽음을 말하던 사람은
퇴사를 미루었고,
돌봄을 말하던 사람은
서류 조건을 계산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사랑과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계산의 문제라는 걸.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

말로는 모든 걸 내놓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단 하나도 내려놓지 않는 사람.

그 간극 속에서
엄마는 점점 작아졌고,
나는 점점 더 많은 결정을 떠안게 됐다.

아빠의 말은 늘 컸지만,
그 말이 실제로 무게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다 할게.”
“내가 책임질게.”
“내가 죽으면 따라 죽을 거야.”

이 말들은 이제
나에게 결의가 아니라 경고로 들린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누군가는 대신 감당하게 된다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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