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2022.9.6.) 외 (3)
2022년 9월 6일.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힌남노는 역대급 태풍이었다. 한반도에 근접했을 때의 중심기압이 955헥토파스칼로, 1959년사라, 2003년 매미에 이어 역대 3위였다. 상륙이 임박한 때 태풍 힌남노의 위력은 ‘강’의 세력이었다.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43m였다.
태풍은 중심 부근 최대 풍속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초속 17m, 시속으로 61km 이상일 때부터 태풍이라 부르고, 초속 25m 이상이면 ‘중’ 등급, 초속 33m 이상이면, ‘강’ 등급, 초속 44m 이상이면 ‘매우 강’, 초속 54m 이상이면 초강력 태풍이다. 힌남노가 ‘매우 강’ 등급인 초속 44m에 약간 모자란 초속 43m였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달리는 열차가 탈선할 수 있고, 큰 돌들이 날아가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위력이다.
KBS는 힌남노 때 태풍 재난방송으로선 역대 가장 긴 연속 생방송을 했다. 9월 5일 새벽 6시부터 6일 15시 10분까지 장장 33시간 10분간 연속으로 생방송을 했다. 앞뒤로 단속적으로 했던 특보나 특집 9시 뉴스까지 포함하면 태풍 힌남노 재난방송은 총 38시간 5분이었다.
자체 매뉴얼상 태풍 재난방송은 태풍 상륙 예상 시점 9시간 전부터 연속생방송을 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9월 5일 저녁 8시부터 연속생방송에 들어가도 무방한데, 그보다 14시간이나 앞당겨 연속생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힌남노가 역대급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정보를 선제적으로 알리고, 대응을 좀 더 일찍 하도록 하려는 것이고, 또한 태풍은 경로와 속도 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각 부서와 지역총국도 미리 준비를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힌남노가 상륙하는 새벽을 회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해프닝 한 가지.
태풍의 남해안 상륙이 임박한 때, 경북 포항 일대에선 맹렬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직전 한 시간 동안 무려 70mm가 내렸다. 자동차 와이퍼를 가장 빨리 작동시켜도 금세 앞유리를 덮을 정도의 비가 시간당 30mm의 ‘집중호우’다. 그러니 70mm면 얼마나 강한 비인가.
<그림 23>에서 보듯 새벽 4시 25분 현재 레이더 영상에서 포항 일대에 직선 모양의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을 볼 수 있다. 공포의 ‘선상강수대(띠 모양 비구름)’였다. 이 띠 모양의 비구름은 별로 이동이 없이 이때를 전후한 시점부터 무려 3시간 넘게 포항 일대에 머무르며 폭우를 퍼부었다.
새벽 4시 50분쯤이 되자, 기상청 자료가 실시간 집결되는 ‘통합디지털재난정보시스템’화면에 포항 남구에 직전 한 시간 강수량(mm)이 70.3이라고 떴다.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은 기상청이 시간당 72mm의 비가 오거나, 시간당 50mm에 3시간 누적 강우량이 90mm이상이면 집중호우로 부르기도 부족해 ‘극한호우’라고 부른다. 힌남노가 왔던 2022년엔 아직 이런 용어가 없었지만, 이미 재난센터 직원들과 기상전문기자들의 머릿속엔 시간당 50mm만 되어도 어마어마한 비라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시간당 70mm 이상의 폭우가 내리는 곳은 경험상 피해 가능성이 매우 높고, 곳곳에서 침수와 산사태 피해가 속출하는 수준이다.
TV화면 하단에 낼 자막 속보를 썼다. “경북 포항시 남구에 시간당 70.3mm 집중호우…침수 주의”라고 써서 입력한 뒤 주조정실(주조)로 전화를 했다. 주조는 방송국에서 방송 화면을 전국으로 송출하기 전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최종 통제를 하는 곳이다. 주조엔 MD(Master Director)들이 24시간 돌아가며 잠시도 공백 없이 근무한다. 화면에 자막을 내달라 했더니 지금은 “싸인온(SIGN ON:그날 방송의 개시를 알리는 아나운싱이나 음악)” 시간이라 낼 수가 없고, 조금 뒤에 내겠다고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폭우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긴급히 알려야 할 순간에 싸인온 시간이어서 자막을 낼 수 없다니… 항의를 하고 싶었으나, 일단은 별 말 없이 기다렸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막이 나갔다.
이번엔 새벽 4시 50분쯤 힌남노가 거제 부근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보통 태풍의 세력은 상륙하는 그 지점이 가장 강하고, 이후엔 육지와의 마찰 등으로 세력이 약해진다. 따라서 태풍은 상륙하는 그곳을 가장 세게 타격하여, 큰 피해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가 태풍의 상륙 지점을 확인해 최대한 빨리 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관계 당국이 필요한 조치를 조금이라도 빨리 취하여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방송을 하려는 것이다.
“오전 4시 50분 태풍 힌남노 경남 거제시 부근 상륙”
다시 태풍이 상륙했다는 자막을 작성해 보도시스템에 입력한 뒤, 주조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애국가’를 하는 중이어서 못 넣어준다고 한다. 애국가 4절까지 부르면 거의 4분이 흘러간다. 다시 연락해 ‘한시가 급하니 자막 지금 넣어달라’고 했다. 그래도 안 된단다. 통화 언성이 점점 커지고 거칠어졌다.
“지금 자막 넣어주세요.…아니 지금 넣어야 한다니까요!…지금 넣어 달라구요!…지금이요!…넣어주세요!! 넣어요!! 넣으라니까!!!”
애국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TV 방송을 시작하면서 애국가 영상이 나가는 동안 다른 자막은 나가면 안 된다는 원칙이 과연 태풍 힌남노의 상륙 지점에서 사는 주민들에게 위험을 빨리 알려 미리 대비토록 하는 일보다 중요할까. 애국가 영상이 나가는 동안 태풍 상륙 소식을 알리는 긴급한 하단 자막이 덮힌다 해서 애국가의 신성이 훼손되는가. 결국 자막은 못 넣고, 애국가가 끝난 뒤 시작된 뉴스특보에서 앵커가 이 소식을 전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상륙 전에 이미 포항 일대와 경주 등 띠 모양 비구름이 계속 머무르며 엄청난 비를 뿌렸다. 오전 6시 39분엔 경주에도 시간당 70mm, 7시쯤 포항 남구 구룡포엔 시간당 무려 110mm가 내렸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면 그 지역의 웬만한 저수지나 댐 등 물그릇이 다 차기 십상이고 하천 물도 넘치게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7시 10분을 넘어서자, 경주시와 포항시가 잇따라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경주시는 송선저수지와 하동저수지가 붕괴 위험이 있다며 송선리, 천포리, 건천리, 구정동, 하동, 마동 주민들에게 고지대로 대피할 것을 요청했다.
또 조금 뒤 포항시에서도 문자를 보냈다. 포항시 연일읍 우복리, 대송면 제내리가 침수됐다며 주민 대피를 요청했다. 태풍은 오전 7시 10분을 기해 울산 앞바다로 빠져나갔지만, 폭우로 인한 침수와 산사태는 그 이후로도 잇따라 발생했다.
침수와 산사태 발생 시점보다 재난 당국이 파악하는 건 더 늦고, 또 그걸 보도하는 건 더 늦기 마련이다. 7시 20분 이후로 경주시는 ‘대부분 도로가 침수’됐다고 했고, 신당천 물천교가 유실됐으며, 왕신저수지가 붕괴 위험이 있다며 주민 대피를 요청했다. 그리고 태풍이 울산 앞바다를 빠져나간 지 6시간이 지난 뒤, 포항시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7명이 실종됐다는 안타까운 속보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