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2022.9.6.) 외(2)
2019년 9월 7일. 태풍 링링이 서해쪽으로 근접하면서 거의 하루 종일 뉴스특보 방송을 하던 때다.
당시 바람의 위력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취재진을 태풍 경로와 가까운 교동도에 보냈다. 교동도는 북한과 멀지 않은 한강 하구 접경 해역의 섬이다. 엄청난 바람이 부는 교동대교 앞에서 라이브 연결을 하던 기자는 방송중 그만 안전모가 벗겨졌다. 카메라도 심하게 흔들리면서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라이브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이 기자는 당황하지 않고 ‘헬멧 좀 쓰고 이어가겠다’라고 말한 뒤 안전모를 쓰려했다. 그 순간, 이번엔 안전모 자체가 강풍에 멀리 날아가 버렸다. 몸은 계속 비틀거렸고 말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이 기자는 최대한 침착하게 준비된 멘트를 이어갔다.
이날 홈페이지 영상에 달린 제목은 “강화 교동도 태풍 현장…기자는 비틀비틀, 안전모는 ‘휙~’”이었다. 현장은 결코 우스운 상황이 아닌데, 영상에 제목을 단 누군가는 위험천만한 재난의 현장을 다소 희화화하는 듯하여 거북스럽다.
영상에 제목을 단 사람만 탓할 일도 아니었다. 당시 기자를 이곳에 보낸 데스크도 사무실에서 TV로 교동도에서 휘청이며 방송하고 있는 기자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그림 좋네. 실감 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간혹 기자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그보다는 줄곧 방송에서 휘청이는 기자의 모습과 비바람의 위력이 실감나게 드러나고 있는 걸 흡족해하고 있었다. 데스크와 함께 사무실에서 TV로 이 장면을 같이 보던 동료 기자들도 오히려 ‘리얼한’ 현장의 퍼포먼스에 감탄하거나, 응원과 격려를 할 뿐, 그 현장이 살벌한 위험 장소임은 어느새 잊어버렸다.
당시에도 사무실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재난방송매뉴얼> 책자에 수록된 ‘재난보도준칙’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본다면 이런 미개한 안전 감수성에서 깨어날 수 있을텐데. 매뉴얼은 들춰보는 사람 없이 사무실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준칙’이나, KBS의 ‘재난보도준칙’을 보면 ‘5. 취재진 안전수칙’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취재진은 사내외에서 사전 교육을 받거나 회사가 제정한 준칙 등을 통해 재난 관련 법규를 숙지해야 하며 반드시 안전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취재현장이 취재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취재에 앞서 적절한 안전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거대한 중계차를 대신하여 간단한 MNG 장비가 등장하고, 기동성이 대폭 향상되어 어디든 가서 라이브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재난과 위험의 현장까지도 '생각없이' 달려 갔다.
2018년 태풍 '솔릭' 때는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다. 그 때는 기자들이 태풍을 쫓아다니며 이른바 ‘스톰체이서(storm chaser)’ 식 중계방송을 했다. 태풍의 현 위치와 경로를 예측해 최대한 가까운 곳에 미리 중계차를 배치하고 뉴스특보에 라이브 연결을 하여 엄청난 태풍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며 현장 상황을 전했다. 앵커는 한술 더 떠 현장 기자에게 “안전에 유의”하라는 모순적인 당부를 한다.
무모한 짓이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건 풍속과 강우량 등 태풍에 관한 모든 정보는 실시간 입체적으로 관측장비에 의해 관측되고, 수치화 및 영상화되어 내 컴퓨터나 휴대폰에 표시되는 세상이다. 그 관측자료와 수치로 위험도를 정확히 산출해 어느 곳이 얼마나 위험한 지 ‘정보값 높은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는 게 재난방송의 목적 아닌가.
태풍에 근접해서 강한 바람과 비가 얼마나 센 지를 보여주겠다는 건 도대체 뭔가.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방송에 지나지 않는다. 재난방송의 본질과 동떨어진 접근법이고, 취재진의 안전도 담보하지 못한다.
기자 스스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면서 시청자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자 정신? 영화처럼 스릴 넘치는 장면? 죽도 밥도 아니다.
일본 NHK는 재난방송을 할 때 집중호우 지역의 중계차 연결을 하면서 호텔 같은 실내에 들어가 유리창 밖의 상황을 보여주며 보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절대 하지 않는 방식이다. 과연 일본 기자가 게으르거나 비겁해서 이렇게 할까? 아니다. 폭우나 강풍의 위험을 알리려 위험한 곳을 접근해 '보여주기' 시전을 하면서 정작 기자 스스로 안전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더 진지하고 솔직하지 않은가.
안전모가 날아갈 정도로 취재진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태풍의 현장에 보내는 것 자체가 위험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행위이다. 비옷과 안전모, 고글 정도만 쓴다고 ‘적절한 안전조치를 강구’했다고 할 수 없다. '물구경', '바람구경'식 재난방송을 위해 더이상 기자들을 '마루타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