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2022.9.6.)외 (1)
태풍 재난방송은 태풍의 경로와 속도 등을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측이 어려운 집중호우 때와 같은 재난방송과 비교해 보자면 쉬운 편이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재난방송 단계와 분량을 정하고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상륙 후 세력이 약해져 태풍이 소멸하면 곧바로 재난방송도 끝낸다. 재난방송 편성 시간을 정하는 것도 쉽지만, 내용도 편하고 쉽게 하려 한다. 문제는 거기서 싹튼다.
태풍 재난방송의 스테레오타입은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 하는 중계차나 MNG 라이브 연결이다. 태풍이 오면 으레 뉴스특보를 열고 본사 사회부와 지역총국 기자들이 릴레이식으로 중계차나 MNG 라이브 연결을 이어간다. 앵커가 현장의 기자를 부르면, 그 기자가 현장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몇 마디를 하고, 그 뒤에 미리 편집된 영상으로 화면을 덮은 채 기자가 멘트를 이어간다. 주요 내용은 현장 상황과 기상청 예보, 특보 발령 지역, 당국의 방재 대비 상황 등이다.
그런데 늘 의문이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을까. 재난방송은 바로 그 주민들이 대피나 구조나 복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정보를 공급하고 있는가 말이다. 관행은 오래됐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태풍의 예상 경로와 가까운 지역총국이 중계차에서 라이브 연결을 할 땐 으레 총국에서 가까운 항구나 해변으로 간다. 피항한 수많은 배들이 항구에 떼로 정박한 모습이나, 거세진 파도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줄 순 있겠으나, 다분히 ‘물구경’식 방송이다. 영상은 그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기자의 멘트와 자막으로 주요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정보의 값어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 정보가 의미하는 바를 친절하고 세밀하게 설명하고 위험 요소를 알리려 하나, 1분 남짓 제한된 시간에 서둘러 말하고 끝낸다. 거기다가 화면에 덮인 ‘밑그림’은 언제 찍었는지 불분명한 영상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여준다. 언제 어느 장소인지 표시하지도 않는다.
태풍이 수도권 쪽으로 올라올 땐 사회부 기자들은 어디로 가서 중계차를 타나? 통상 태풍이 동반한 많은 비로 한강 물이 불어나면 이걸 보여주기 위해 잠수교로 가거나, 물에 잠긴 한강 둔치가 보이는 동작대교 남단이나 동부간선도로 쪽으로 간다. 중계차는 워낙 커서 한 번 출동할 때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여야 하고, 중계차를 댈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 게다가 설치에서 철수까지 한 곳에서 가급적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는 곳이라야 수시로 방송 연결을 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태풍처럼 경로와 상륙 시간, 영향권에 드는 지역 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재난에 중계차는 활용하기 좋았다. 대신 그런 넓은 장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매번 비슷한 곳으로 간다. 잠수교나 여의도 대방역 앞,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제주도 법환포구 등….
그러다가 한 10여 년 전쯤인가부터 MNG가 등장했다. 중계차보다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넓은 장소나 많은 인원이 필요 없다.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오디오맨과 차량 운전기사 이렇게 4명이 어디든 출동해 라이브 연결을 할 수 있다. 기동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MNG 덕에 기동성이 개선됐으니, 이제는 당연히 재난의 현장이나 예방과 대비, 복구의 현장 등으로 종횡무진 찾아갈 법하다. 그러나 또 그러질 못한다. 단순히 ‘물구경’시키는 방송이 아니라 현장의 스토리를 담아 MNG 연결을 하려면 ‘품’이 매우 많이 든다. 태풍의 피해를 예전에 당했던 곳이나 타격을 받을 위험이 큰 곳, 대비를 해놓은 현장 등 의미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하고, 또 그곳은 라이브 연결하는 시점에 무언가 동적인 활동이 벌어지고 있거나 ‘할 말’이 있는 장소여야 한다. 여기에다 무언가 방송에서 말할 스토리를 취재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비바람 몰아치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을 붙잡고 취재하는 게 쉽지 않다. 사람들도 꺼린다. 평소에 태풍 등 재난과 관련된 사람들과 ‘라포’를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급한 날 그럴듯한 장소와 상황, 사람, 스토리가 딱 들어맞는 경우는 별로 없다.
때문에 이런 날에 대비하여 평소에 부지런히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놓아야 기회가 생길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물론 개별 기자의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적으로 구축하는 게 더 좋겠으나, 그럴 여력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재난은 1년에 몇 번 없는 일인데 그런 상황에 대비해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기자들은 외면하게 된다.
결국 이런 일 닥칠 때면 시간에 쫓겨서 그냥 관행대로 쉽게 ‘물구경’ 시켜줄 곳으로 가서 라이브 연결을 한다. 뭔가 차원 높은 걸 추구하길 포기하면 쉽게 갈 수 있다. 쉽게 가도 방송 사고만 아니라면 일반 시청자들은 잘 모르고 넘어가니, 쉽게 쉽게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