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구경방송? 재난정보방송!

서울 동작구 폭우(2022.8.8.)(2)

by 가을하늘

역대급 폭우로 침수된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민들이 다 나와서 밤새 물을 퍼냈지만, 결국 양수기 한 대가 이를 해결했다.

그런데 이튿날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폭우를 뚫고 영등포까지 가서 사 왔던 그런 양수기를 동네 주민센터에 가면 그냥 빌려준다는 게 아닌가! 우리 아파트 주민 가운데 그 사실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날 밤 주민센터에 전화했을 때 연결이 됐다면, 안내를 받을 수 있었겠으나 연결이 안 됐다.

양수기 하나가 그렇게도 요긴한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나 당하는 건 평생 한두 번이고, 잊기 십상이다.

이 양수기가 폭우 때 요긴하다는 걸 상기시켜 주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재난방송이 아닐까.

화면 캡처 2025-09-27 112900.png

그 다음 주에 또 큰 비가 왔다. 아니나 다를까 동작구청은 주민들에게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 번호를 모르는 주민이나, 이 번호를 알아도 별 신경 쓰지 않던 주민들에게, 비록 전화번호만 적힌 간단한 안내 메시지이지만, ‘양수기 대여’와 ‘빗물받이’를 상기시켜 주는 일이 요긴한 정보란 걸 동작구가 깨달은 것이다. 이 사소한 깨달음이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죽음의 위험에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게 한다. 재난방송은 이런 걸 전하는 방송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해 가을이 되자,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는 비로소 ‘호우 시 반지하 주택이나 지하공간에서의 행동요령’ 글이 게시됐다. 이 내용을 보면 지하공간 이용자는 ‘바닥에 물이 조금이라도 차오르거나 하수구에서 역류 시 즉시 대피’하라고 되어 있다. 이 안전수칙에 따르면 그날 밤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오르는 그 때에 물을 퍼내는 건 해선 안 될 일이었고, 불의의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절대 접근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


한편으로, 이런 웹사이트에 글로 게시된 행동요령을 유심히 보고 익힐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방송이 필요하다. 재난 시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TV방송에서 양수기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주민센터나 양수기 대여 등을 안내해 주고, 지하 주차장이 침수됐을 때의 대비 요령 등을 큰비가 오기 전, 또는 한창 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라도 자세히, 반복적으로 알려주었다면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치단체마다 형편이 다 다르니 모든 지자체의 상황을 일일이 다 중앙 방송에서 낼 순 없을 터이다. 그러나, TV 재난방송이 사후정리식, 보여주기식, 회상식 방송에서 탈피하려면 이런 시도는 계속 해야 한다.

TV는 재난 시엔 재난 장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같은 재난 '구경' 방송이 아니라, 지금 내가 이 재난을 당할 때를 대비해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게시판과 같은 방송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물론 우리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NHK 등 일본의 재난방송처럼 화면이 좀 어지럽고 글씨 자막이 가득하더라도 되도록 많은 정보를 넣어 TV 화면 자체가 정보 게시판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었다. 그러나 이후로 3년이 지났지만 재난방송 화면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수십년 관행 그대로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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