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재난방송의 딜레마

울산 주상복합 화재(2020.10.9) (1)

by 가을하늘

화재는 <뉴스특보> 형태의 재난방송을 하기가 어려운 재난이다. 화재의 발생을 예측할 수가 없고, 화재가 난 뒤 특보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데다 대부분은 일찍 꺼진다. 또, 작은 화재는 하루에도 수십 건이 나기 때문에 일일이 특보를 할 수도 없다.

일정 기준을 만들고, 이를 넘는 규모의 화재일 때만 특보를 할지 검토한다. <KBS재난방송 매뉴얼>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대형 화재일 때 뉴스 특보를 하도록 원칙을 정해놓았다. 고층 건물이나 다중이용시설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응 3단계가 발령되고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될 때 특보를 한다. 통상 소방대응 1단계나 2단계 정도의 상황 때부터는 소방 당국이 대외에 발표를 하기 때문에 그때 발표된 내용을 보고 특보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 기준을 적용한 특보를 하기도 애매할 때가 많다. 불이 크게 난 것으로 보여 현장에 중계차 등 취재 장비와 인력을 보냈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상황이 끝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는, 애매한 크기의 화재가 발생해 장비와 인력을 보낼까 말까 우물쭈물하다가 특보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화재는 되도록 그냥 정규 뉴스 시간에 다루려 한다. 정규 뉴스 시간에 다룬다고 문제 될 게 없고, 특보를 임시 편성하기 위한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으므로 웬만하면 화재 소식은 정규 뉴스 시간에 소화하면 된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 지진해일경보, 공습경보 발령 때엔 KBS는 10분 이내에 뉴스특보를 해야 한다는 등의 방통위 가이드라인상의 의무가 있지만 화재의 경우엔 특보를 반드시 하라는 의무규정이 딱히 없다.

이런저런 상황에 '특보를 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특보를 안 하고 나면, 그 뒤로 늘 찜찜하다. '특보를 했어야만 했던 수많은 이유'가 떠오른다. 혹시라도 시청자들로부터 ‘늦장 보도’나 '소극적 대응'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지점이 있을까 조마조마하다. 2019년 고성 산불 때나, 2020년 부산 폭우 때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것도 정규 뉴스 때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적시에 사태의 심각성을 적극적으로, 선제적으로 알리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재난을 직접 당한 주민들이 그 시각 그곳에서 겪고 있을 피해를 생각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특보를 여는 게 맞지 않느냐는 내면의 추궁이 스스로를 괴롭힌다.

아래는 2010년 이후 인명 피해가 상당히 컸던 대형 화재였음에도 KBS가 뉴스특보를 하지 않았던 주요 사례들이다.


2012. 5. 5.(토) 20:50~ 부산 노래방 화재 / 사망 9명

2014. 5.26.(월) 09:01~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 사망 8명, 부상 58명

2014. 5.28.(수) 00:24~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 사망 21명

2017. 2. 4.(토) 11:00~ 경기 화성 동탄메타폴리스 아파트 상가 화재 / 사망 4명, 부상 47명

2018.11. 9.(금) 07:30~ 서울 종로구 3층짜리 국일고시원 화재 / 사망 7명, 부상 11명

2020. 7.21.(화) 08:29~ 경기 용인 SLC물류센터 화재 /사망 5명, 부상 8명

2020.12. 1.(화) 16:37~ 경기 군포 산본 아파트 화재 / 사망 4명, 부상 7명

2022. 6. 9.(목) 10:55~ 대구 변호사사무실 방화 화재 / 사망 7명, 부상 50명

2022. 8. 5.(금) 10:17~ 경기 이천 관고동 병원 건물 화재 / 사망 5명, 부상 42명

2022. 9.26.(월) 07:45~ 대전 현대아웃렛 화재 / 사망 7명, 부상 1명


위 사례들을 자세히 보면 특징이 있다. 주로 주말이거나 새벽, 또는 출퇴근 시간 등 취약시간대다. 취약시간대엔 신속한 대응이 어렵고, 인력도 모자란다.

사실 <뉴스특보>라는 이름의 긴급 편성 프로그램을 방송하려면, 취재와 기사작성, 생방송 제작, 출연 등 생각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10분짜리 간단한 특보를 하려 해도 TV 화면에는 진행자 1명만 나오지만 적어도 10명 내외의 스텝이 필요하다. 그러나 취약시간대엔 이만한 인력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특보 열기를 꺼려하는 소극적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이유를 따져보면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구구한 넋두리가 다 무슨 소용이랴. 불구덩이에서 생명의 위협과 극심한 공포를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 또는 그 지역 주민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취약시간이라 인력이 없어 특보를 못한다'는 말은 한가하고 한심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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